친목도모와 상부상조로 노년 위로해 나간다
원덕산경로당<군서> / 경로당 탐방 25
2006-03-08 박은정
이곳에 위치한 원덕산경로당(회장 김병님 사진)은 10년전 건립된 회관건물을 경로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원덕산경로당은 여자노인회가 먼저 구성돼 활동해오다 4년전 남녀노인회를 통합해 운영되고 있으며 정혜숙 초대회장에 이어 2대째 여성이 회장을 맡고 있다.
친목을 도모하고 서로 상부상조하며 노년을 위로하고 있는 이곳은 60여명의 회원이 소박한 정을 나누며 여가를 보내고 있다.
여느 경로당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농한기에는 회원 모두가 모여 점심을 나누며 화투놀이 등으로 무료함을 달래고 있다. 논농사와 고추농사를 주로 짓고 있는 이곳은 요즘 고추모 이식으로 서서히 농사준비가 시작되고 있었다.
“정부보조금만으로 노인정을 운영하다보니 재정적인 어려움이 많이 따르기는 하지만 마을이장이나 부녀회, 청년들의 도움이 크고 작은 위안이 되고 있다”며
주민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한 김병님 회장은 “넉넉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것은 자체적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으며 경로당에서 가장 아쉬운 것이 있다면 아픈 몸을 보호 또는 치료할 수 있는 간단한 의료기구나 운동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주요 지형물로는 정휴건씨의 국고미 저장창고 2동이 있고 1590년경 임진왜란때 진주정씨 의명이 경남 진주에서 피난해 왔다가 이곳에 정착해 살다가 마을을 형성했다”며
“1592년경에는 우곡동 이자명이 정착해 우촌(牛村)이라고 부르다 1900년경에 마을 뒷산이 복을 많이 받게 될 형국이라고 해 덕산(德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마을의 유래를 설명했다.
마을 뒤로는 덕새이산과 앞으로는 상소마을 그리고 하소마을이 있는 이곳은 43호에 70여명의 주민이 모여 살고 있다. 이곳은 1914년 행정구역개편때 덕산리 1구 원덕산과 덕산리 2구의 상소와 하소로 변경됐다.
이곳에 있는 망곡비(望哭碑) 터는 조선후기 고종때 명성황후가 일본군에 살해당하자 마을 선비들이 덕새이산에서 황후의 출상때까지 북향해 통곡하고 깊은 애도를 표한 곳으로 그후 후손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망곡비를 세우고 그 뜻을 깊이 추모하고 있다.
또 이곳에는 김공의씨 효열각이 있어 진주할아버지의 영정과 영묘가 모셔져 있다.
겨울잠 자던 개구리가 나오고 초목의 싹이 돋아나는 때인 경칩이 지난 후 봄내음이 점점 강해지는 들녁을 향하는 원덕산경로당 어르신들.
살아온 삶의 고단한 그림자인 어르신들의 깊이 패인 주름에도 따사로운 봄볕이 건강하고 환하게 비추길 희망하며 포근한 봄바람속에 어르신들과 작별을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