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다르고 속다른 미국의 계산
2006-08-03 영광21
보름이 넘게 계속된 이스라엘의 공습에 의해서 레바논 쪽 사망자만 400여명이 훨씬 넘는다고 한다. 특히 피해자의 대부분이 민간인이고 그중에 3분의1은 어린아이여서 무차별 공습이라는 국제적인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무차별 공습으로 정든 고향땅을 떠난 난민이 60만 명을 넘긴 상태인데다가 난민촌마다 식량과 물과 의약품이 절대 부족한 처참한 상황이라고 한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이 공습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데 정작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은 들은 체조차 하지 않는다.
세계 곳곳에서 연일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각종 시위가 열리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오히려 일부 지상군까지 투입하면서 전쟁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이번 기회에 이슬람 과격 무장단체인 헤즈볼라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면서 전면적인 지상군 투입까지 하겠다는 분위기다.
만일 이스라엘이 전면적인 지상군 투입을 하면 시리아는 참전을 하여 헤즈볼라를 돕겠다고 선언했다. 이란도 가만히 있지 않고 이스라엘에 보복을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선 상태여서 중동은 일촉즉발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대로 간다면 중동전의 확대가 시시각각 눈앞에 다가오는 형국이라서 국제사회는 갖은 중재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공격에 대한 유엔안보리 제재결의안은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되고 말았다. 도대체 미국이 얘기하는 평화는 어떤 것인지 몹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한 술 더 떠서 이번 사태의 책임은 헤즈볼라에게 있으며, 이스라엘은 단지 자위권을 행사한 것이라며 감싸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견해는 미국이 이번 기회를 중동에서 이슬람 세력을 약화시키는 계기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지난 1996년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이 충돌했을 당시에는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을 보내 휴전회담을 이끌어내는 등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한 바 있는 미국이 이번에는 라이스 국무장관을 중동에 보내 평화책을 강구하기 보다는 시리아를 이란으로부터 차단하여 헤즈볼라를 고립시키는 것을 주목적으로 삼고 있다는 분석이 압도적이다.
이런 속내를 알고 이번 사태를 살펴보면 겉으로 나타나기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대립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후세인이 사라진 중동무대에서 지배권을 확대하려는 미국과 이란의 대리전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
이란을 진원지로 해서 이라크와 시리아와 레바논을 잇는 시아파 근본주의에 의한 반미벨트의 고리를 끊으려는 것이 미국의 계산이다.
그러나 이미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확인되었다시피 레바논 사태가 악화될수록 미국에 대한 아랍인들의 민심은 멀어질 것이 뻔하다. 설령 이번에 헤즈볼라의 뿌리를 뽑는다고 하더라도 밑바닥에 깔린 반미의 감정까지 잠재울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은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중동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무고한 양민의 피해를 없애려는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지금 당장 레바논 사태를 끝낼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이 그렇게 외치는 평화라는 것은 알량한 공치사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