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콘'발언 실수라도 '응당한 조치' 취해야 대화 가능"
[평양 현지취재] 방북 과정에서 북측 고위관계자 밝혀
2003-04-11 영광21
아울러 북한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국제정세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최근의 한미 공조에 대해 극도의 경계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송 대변인의 '실언' 이후 북측은 당초 예정된 남북대화를 즉각 중단하는 등 적극적으로 반발을 보이긴 했으나 평양 현지에서 북측 고위인사로부터 이같은 입장이 확인되기는 처음이다.
전남남북교류협의회(회장 조충훈 순천시장)의 남북간 지방자치단체 교류사업 합의서 조인식 취재차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평양을 방문한 <오마이뉴스> 기자는 1일과 2일, 두 차례에 걸쳐 북측 고위 관계자와 방북 대표단의 간담회 자리에 동석했다.
북측 고위 관계자는 <오마이뉴스>기자가 동석한 이 자리에서 남측 대표단에게 지난달 20일 송경희 청와대 대변인이 청와대 브리핑에서 행한 워치콘(Watch Condition·대북정보감시태세) 발언을 거론하며 "남측 당국의 응당한 조치가 없을 경우 당국자간 회담에 일체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공식발표를 어떻게 '실수'로만 볼 수 있나"
이날 남측 대표단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측 고위관계자는 "송 대변인의 발언을 남측은 자꾸 '실수'라고 말하는데 정부당국의 입장을 밝히는 사람의 공식발표를 어떻게 '실수'로만 볼 수 있냐"며 "지금같은 엄중한 정세에서 그런 발언을 '실수'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측 고위관계자가 민간차원의 남북교류 차원에서 방북한 남측대표단에게 두 차례에 걸쳐 이 사안을 강조한 점은 북측 당국차원의 의사를 간접 전달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 문제가 향후 남북관계에 적잖은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북측은 미국의 이라크침공 이후 한층 강화된 한미공조 분위기아 국제정세에 대해 극도의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측 고위 관계자는 남측 대표단에게 "우리는 미국의 전쟁시야권에 들어 있다고 보고 정세적 긴장감을 느끼고 있다"면서 "송 대변인의 발언 이후 남측 군대에 실탄이 지급되고 비무장 지대에서 (대북) 체제 비난방송이 강화된 걸로 알고 있다"며 대북 침략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또 "남측이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송 대변인의 발언이 '실수'라고 전해온 걸로 알고 있다"고 밝히고는 "그렇지만 '실수'라도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저지른 '실수'인만큼 '응당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북측 고위 관계자는 "송 대변인의 발언 이후 예정돼 있던 북남 당국자간 회담을 모두 연기시켰다"며 특히 "남측이 '응당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이후에도 일체 당국자간 회담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고위 관계자는 "남측 정부의 인사문제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남측이 물밑으로라도 '응당한 조치'에 대해 얘기해야 되지 않느냐"며 "체제와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도 차이가 있지만 이 문제는 (북측으로선) 매우 중대한 문제"라고 말했다.
"북남당국 신뢰위해서도 '응당한 조치' 반드시 필요"
이에 대해 동석했던 남측 인사들이 "송 대변인의 발언은 단순한 '실수'로 언론에서도 해프닝성 발언으로 보도한 사안"이라고 전했다. 남측 인사들은 또 "송 대변인이 부임한지 얼마 안된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고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상 한번 임명한 사람은 쉽게 바꾸지 않는다"는 점을 들며 남북관계 경색을 우려했다.
남측 인사들의 이같은 우려에 대해 북측 고위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가 김대중 정부의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밝히고 있고 또 노 정부가 고심하는 게 보인다"면서도 "그러나 북남 당국간의 신뢰를 위해서라도 '응당한 조치'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거듭 제기했다.
이 고위 관계자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북측이 느끼는 '정세적 긴장감'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북측은 남측이 미국의 대북 침략정책에 '공조'하는 게 아니냐는 강한 의혹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같은 북측의 의혹은 조선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에서 잇따라 관련 기사를 보도하고 있는데서 확인되고 있다. <로동신문>은 4월2일자에서 "남조선 당국이 외세와 함께 우리 공화국에 대한 '경계태세'를 강화하면서 대규모적인 북침합동군사연습을 벌린 것은 그 한 실례"라고 주장한데 이어 3일자에서는 "'독수리'와 '연합전시증원연습'은 제2의 조선전쟁 도발 준비"라며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인용했다.
이 신문은 또 4일자에서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인용, "남조선 육군부대가 공세적 도하작전연습을 감행했다"며 "남조선 호전세력들의 분별없는 행위는 조선반도 정세를 더욱 긴장에로 몰아 가고 있다"고 남측을 강하게 비난했다.
특히 5일자에서는 주한 미군 관계자가 "이번 합동군사연습이 끝난 후 일부 무력을 3주일동안 그대로 두고 보완훈련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면서 "이 사실은 (미국이) 이라크에 대한 침공과 함께 조선반도에서도 정세를 전쟁국면에로 몰아 가기에 광분하는 실증"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북측의 이같은 의혹제기와 강경한 입장표명에 대해서 우리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북측의 의혹을 풀지 않을 경우 남북관계가 심각한 경색국면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 이주빈 기자 clubnip@ohm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