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21> 탄생과 함께 사회첫발, 21만의 색 나타내길”
김광훈 / 낙월면 안마도
2006-10-26 영광21
취재, 기사, 편집, 배포까지 1인 다역을 해야 하는 풀뿌리 지역신문의 어려움, 그것도 초창기 멤버인 죄를 “주말에 못 쉬는 것은 물론이고 일주일에 2~3일씩 밤새는 건 기본이였죠”라며 잠시잠깐의 으스댐으로 대신한다.
그런 만큼 그 누구보다 <영광21>에 대한 애정도 깊다. “그래서 지금도 객원기자라는 이름을 빌어 인연의 끈을 계속 잇고 있나 봐요”라며 가벼운 웃음을 짓는다.
글쟁이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지금은 너무 동떨어진 수산양식업을 하고있다. “원래대로 되돌아 간거죠. 바다는 제가 나서 자랐고 지금도 삶의 근거가 되고 있으니까요” 안마도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다녔고 여전히 부모님은 칠산바다를 생활터전 삼고 있다.
“꽃게종묘생산, 해삼양성, 우럭노지종묘 등 양식쪽 일을 하죠” 남들보다 앞서 손을 댄 양식품종은 많은 성과들을 줬지만 시행착오 또한 함께한 과정이었다. 특히 모험성이 강한 양식업의 불투명성은 “그동안의 성과를 한축으로 하고 또 수산가공유통 분야로 무게중심을 옮겨갈까한다”며 수산 테두리내에서 일단의 변화를 내비춘다.
“신문엔 시대정신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또 그 시대정신은 자신만의 색과 정체성으로 외화돼야 하죠” <영광21>의 지역내에서 쌓은 성과와 소중한 재부들에도 불구하고 <영광21>만의 색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가끔은 권력의 횡포에 매를 드는 것이 아닌 매를 맞아야할 대상자로 느껴질 때가 있다”고 강하게 일갈한다.
그는 “더욱 분발해 미래영광의 큰 디딤돌이 됐으면 한다”고 애정의 바램과 당부도 잊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