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의 귀족 백합, 땀과 혼 쏟은 삶의 일부"
백합양식 / 김정배씨<백수>
2006-11-02 영광21
그는 백합과 30여년간 동거동락 해왔다. 백합조개는 조선시대 왕실 진상품이었고 궁중 연회식에 쓰였다고 한다. 껍데기는 약품용기 또는 바둑의 흰돌로 이용됐으며 다른 조개와는 달리 필요한 때를 제외하고는 입을 열지 않는다 하여 정절에 비유되곤 했다. 이를테면 조개중의 조개, 조개의 귀족인 셈이다.
그의 하루일과는 애마가 돼버린 트랙터를 타고 하사리 갯벌지선 백합양식장 56ha를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썰물때를 맞춰 매일 두번씩 양식장에 나가죠." 백합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게 쳐놓은 1km 길이의 조위망 점검, 외지인 출입통제, 백합 상태점검 등의 일을 한다.
"60, 70년대 서해안 곳곳에서 백합양식이 이뤄졌지만 지금은 여기 영광지역 몇 곳에서만 양식을 하고 있습니다." 모래사질이 많고 밀물이 유입되는 기수역지역을 선호하는 백합은 한때 서해안갯벌 곳곳에서 양식을 했다. 하지만 80년대 병으로 한번, 또 전국 최대의 생산지 새만금이 간척으로 죽음의 갯벌이 돼 또 한번 삶의 터전을 잃어버려 이제 영광지역에서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새만금에서만 25년간 백합, 바지락 등 패류양식을 했었죠. 하지만 간척과 함께 모두들 백합양식에서 손을 놓았지만 저는 그만 둘 수 없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집안의 가업인 젓갈가공판매 일을 했다. 조개젓 원료 수급차 서해안갯벌 곳곳을 드나들며 패류양식에 가능성을 확인한 그는 새만금에 터를 잡아 직접 조개양식에 뛰어들었었다.
"하사리는 백합의 서식지이고 모래사질에 민물기의 영향을 받아 백합양식이 적합한 곳입니다." 새만금마저 간척으로 잃게 되자 그는 고향땅 영광으로 돌아와 7년전 이곳 하사리에 새둥지를 틀었다.
"술안주로는 백합을 따라갈 것이 없습니다." 백합은 회, 탕, 죽, 구이, 찜 등 어떤 요리를 해도 그 깊은 맛과 향이 뛰어나다. 또한 40여가지의 필수아미노산이 들어있고 옛부터 간질환, 특히 황달에 좋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는 "백합의 이름은 껍데기 둘레가 100mm이란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껍데기 표면에 100여가지의 각기 다른 무늬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란 말도 있다"며 상합, 생합, 대합 등 지역에 따라 이름이 달리 불리운다고 한다.
"백합의 유실을 막고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바닷물이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반축조식방법을 도입해야 합니다." 반축조식 전도사가 돼버린 그, 백합양식의 기술적 환경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30여년 패류양식 경험의 결과물이라고 강조한다.
"90년대 중반엔 참 재미있었죠." 한때 백합은 그에게 커다란 부를 안겨줬다. 하지만 이곳으로 옮겨온 후 별다른 성과를 못 만들고 있다. "어렵지만 결코 주저앉을 수 없습니다.
7년간 땀과 혼을 쏟은 갯벌은 이미 삶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라며 더 큰 도약을 준비하는 그, 새로 들여올 종패 씨뿌림 장소를 확인하기 위해 트랙터에 올라선다.
김광훈 객원기자 mindlre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