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생각하고 만들어 가기 나름입니다”
김봉순 / 염산면 축동리
2006-12-21 박은정
“어르신 이 마을 김봉순씨 댁이 어딘가요.” “서울 병원가서 안즉 안왔을텐디.” “어제 내려왔다고 하셔서요.” “이 길따라 쭉 올라가면 맨 끝집이여.” 염산 신성리로 향하는 큰길가에서 조금 들어간 위치에 있는 집을 찾아가 만난 김봉순(45)씨.
검진과 간단한 수술을 위해 병원을 다녀왔다는 사람답지 않게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다. “내세울 것도 없는데 부끄럽네요. 오셨으니까 안으로 들어오세요.” 그를 따라간 방에는 큰 상위에 현미가 수북했다. 현미속에 있는 잡티를 골라내던 중이었나보다.
“저는 이렇게 농산물을 소량 포장해 도시에 있는 소비자들과 직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농촌에서도 조금만 눈을 돌리면 수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많아요”라며 택배로 주문 들어온 종이들을 내비치는 김 씨. 그는 직접 생산한 콩 팥 보리쌀 고춧가루 등을 친인척이나 그를 통한 인맥들의 소개로 판매하며 소득을 올리고 있다.
서울이 고향인 김 씨는 광주에서 치러진 친구 결혼식 피로연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해 농촌생활을 시작했다. 땅 설고 물 설은 것은 물론이고 농사는 더더욱 알지 못했던 그는 2남5녀의 맏며느리에 홀시어머니를 모셔가며 어렵게 결혼생활을 했다.
그러던 98년 막내아들이 막 돌을 지날 무렵 김 씨는 가슴에 이상한 징후를 느끼고 병원을 찾았다. 30대 후반이었던 그는 유방암 2기말이란 진단을 받게 되고 수술과 항암치료 등을 하며 여성으로서 긴 아픔을 겪게 된다. 투병과 우울증으로 막내를 자신이 돌보지 못하는 상황까지 가면서 힘든 생활을 보낸 그는 아이들을 생각해 다시 삶에 용기를 얻으며 삶의 재기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시작한 사업이 농산물 직거래다. 본인이 몸이 아파본 사람이라 누구보다도 건강을 중요시하고 이런 염려와 정성을 보태 지은 농산물을 병원에서 알게 된 환우들을 비롯한 도시 소비자들에게 연결하며 새로운 보람을 찾고 있다.
“저는 요즘 아플 시간이 없습니다. 철철이 농사도 지어야지 또 도시 소비자들이 원하는 농산물을 챙겨서 보내야지 정말 눈코뜰새가 없죠. 그리고 제가 아파보니 세상을 어렵게 살 필요가 없더라구요. 처한 현실을 감사히 여기며 최선을 다하면 그것이 제일이지요.”
김 씨는 조그맣게 건설업을 하는 남편의 외조를 받으며 논농사 5,000여평과 밭농사 2,000여평을 지으며 2남1녀의 아이들과 아흔을 바라보는 시어머니를 정성껏 돌보고 있다. 이웃들은 “김 씨는 사람이 참하고 부지런하며 시어머니는 물론이고 마을 어르신들에게도 친절하다”며 그의 성실함을 칭찬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모두가 똑같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마음가짐이 삶을 움직여 가는 것이니까요”라며 주문 들어온 검정콩을 포장하는 김 씨의 긍정적인 행복이 건강하게 오래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