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전남도의회 운영위원 러시아 북유럽 연수기

2007-02-02     영광21
대합실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는데 대합실 방송을 통해 기차가 지연된다는 말과 함께 비행기도 지연된다는 방송이 나왔다.

4시간 가량 기차역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결국 폭설로 인해 모든 기차운행과 비행기 운행이 정지됐다고 한다.

다시금 버스를 이용해 노르웨이 오슬로로 이동하기로 결정하고 버스에 승차했다. 이때가 저녁 10시30분이었다. 평소 스웨덴은 눈이 조금씩 오지만 이날의 폭설은 100년 만의 폭설이라고 한다.

새벽 3시30분 노르웨이 국경에서 200km 떨어진 조그만 도시의 호텔에 도착해 투숙, 조식을 마치고 노르웨이 오슬로를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고속도로 주변의 경관은 가히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감탄사가 연발하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어느덧 노르웨이 국경을 지나 수도인 오슬로에 도착했다.

현지교포인 대구출신 김유미 가이드를 만나 노르웨이 일정을 소개받으며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이때가 11월2일 13시10분이었다.

김치찌개로 준비한 점심, 이국에서의 김치찌개 맛은 색다른 일미였다. 식사를 마치고 오슬로의 여정이 시작됐다.

사회주의 국가로 여성우월주의 사회
노르웨이는 입헌 군주국이면서 사회주의 국가이다. 북위 60°, 동위 16°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한국의 1.5배 크기이고, 인구는 450만명이다.

석유 산유국이기도 하면서 수력발전소가 매우 발달하였고, 크로네(kr)라는 화폐를 쓰며 GNP는 1인당 5만4천달러로 경제부국이다.

생활의 균형유지를 위해 적게는 소득의 23%에서 많게는 80%까지 내는 세금의 나라이며, 동거문화를 지향해 결혼하여 사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여성우월주의를 주장하는 모계 사회라고 한다. 15세 이상이 되면 자활을 인정하며 의료비는 전액 무료이다.

먼저 견학한 곳이 바이킹 박물관이다. 8세기∼11세기 활약한 바이킹의 후예들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지금까지 신대륙 발견자가 콜롬버스로 익히 알고 있지만 콜롬버스보다 500년 앞서 네이브에릭슨이라는 사람이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한다.

길이30m, 너비10m의 바이킹호는 거친 파도를 헤치고 항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배였다. 다음으로 조각공원을 견학하고 다시금 설원의 도시공원이며 스키도시라 일컫는 게이로를 가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5시간 동안의 버스거리로 도착한 시간이 저녁 9시였다. 석식을 마치고 내일의 일정을 위해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고산지대에 위치한 교통요충지 훌도시
3일 아침 5시30분 기상해 어둠이 가시지 않은 게이로의 아침공기를 마시기 위해 호텔밖으로 산책을 나왔다.

맑은 공기의 상쾌함을 느끼면서 움푹 들어가는 눈밭을 밟으며 이국의 정취에 감동과 감탄을 느끼며 호텔식 뷔페를 들었다.

그 나라를 알려면 문화를 배워야 하는데 학창시절 배우고 들었던 노르웨이를 어찌 다 기억을 하겠는가? 그래서 노르웨이 음식문화를 배워 두는 것도 나에게는 커다란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전통음식에 손이 가게 되었다.

오늘은 오전 10시 게일로의 훌도시 시의회 시장단 일행과 미팅이 있는 일정이다. 훌도시는 고산지대에 위치하며 노르웨이 교통의 요충지이다. 면적은 1,889km2이고, 인구는 4,500명이며 경제적 자생력이 제일 풍부하고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도시이다. 호텔의 미팅룸에서 에릭시장 일행을 접견했다.

간단한 인사를 주고 받으며 에릭시장으로 부터 훌도시의 자치행정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훌도시는 100년전 부터 철도를 이용해 관광객들이 찾아 왔으며, 100주년 마다 별장을 짓게 되는데 5,000개의 렌트 별장과 50여개의 호텔이 있다.

37% 인구가 관광업에 종사하며, 1994년 동계올림픽 이후 경제가 급격히 부상했다고 한다.

연평균 5억원 급여받는 공무원
훌도시에는 7개의 부서로 편성되었으며, 그중 사회보건부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6명의 시의원이 있으며, 모든 결정은 시의회 의원들이 의결하고 집행여부를 토론해 시장에게 보고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훌도시의 공무원은 620명이 근무하고 핵심적으로 일하는 공무원은 420명이다. 매년 10∼12%씩 인원이 충원되고 급여는 연평균 5억원 정도이다. 에릭시장의 자세한 설명을 들은후, 기념촬영을 마치고 다음 일정을 위해 헤어지게 되었다.

오전 11시30분 미르달산을 횡단하는 전동열차를 타기 위해 도보로 약 5분간 기차역을 향해 걸었다. 빙판으로 변해 버린 도로를 쌩쌩 달리는 노르웨이 차량들을 보면서 의아해 정차된 차의 바퀴를 들여다 보니 쇠못이 박힌 타이어를 장착하고 있어 의문이 풀렸다.

이를 어길시에는, 타이어 1개당 50만원씩의 벌금을 물어야 하는 법적 규정이 있다고 한다.
역에 도착해 기차에 승선한 뒤 바깥을 들여다 보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기 시작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이렇게도 만드는가, 상상을 초월하는 경관에 꼭 몽유도원에서 헤매고 다니는 사람으로 착각이 될 정도로 너무도 아름다운 광경들이 스쳐 갔다.

해발 2,000m까지 전동열차가 달리게끔 되었다는데 우리 일행은 1,000m까지 가는 것으로 되었다. 고산병에 대한 준비가 안된 관계로 해발 1,000m에 도착해 로맨틱 사랑의 열차를 타기 위해 내렸다.

이 철도는 18개의 터널로 구성되었고, 수작업 공사끝에 만들어낸 역작의 철도이며 346명의 많은 인원이 죽은 애닳은 철도이다. 덜커덩거리며 달리는 로맨틱 사랑의 열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주변의 다른 광경을 목격하며 탄성을 자아냈다.

깍아 내린 듯한 절벽위에 폭포수가 쏟아지고 집체만한 고드름이 달라붙은 것하며 간간히 초록색의 이름 모를 나무들이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들, 그리고 노르웨이의 주나무인 자작나무의 스산한 날개짓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그동안의 피로감을 씻어 주고 있었다.

연중 영하 1℃ 유지하는 피요르드호수
오후 3시 유람선에 승선하였다. 푸르다 못해 검푸른 색으로 변한 피요르드호수의 물결을 헤치고 잔잔하게 떠나는 유람선 선상의 커피 한잔은 정말이지 무아지경에 빠지게 하였다.

피요르드란 몇 백만년전 빙하기때 지구의 온난화 현상과 지각변동에 의해 빙하가 침식되면서 깍아 내려 U자 계곡을 만들어 낸 자연 최고의 결정체인데, 해수와 담수가 함께 어울러져 연중 영하 1℃의 온도를 유지하는 과학적으로 분석이 불가능한 담수호다.

2시간여 동안 아름답고 멋진 풍경들을 보면서 타고 온 유람선이 도착한 곳이 구드반겐 마을이었다.

이곳에서 버스를 이용하여 3시간 거리인 베르겐으로 가기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39개의 암반 터널을 지나야만 솔베지송 작곡가인 그리그가 탄생하고, 북극탐험가 난젠의 태생지 베르겐에 도착한다고 한다.

간간히 들려 오는 가이드의 노르웨이에 대한 아름다운 전설을 들으며 어둠을 가로지르고 달리는 버스에서 차창 밖을 감상하기엔 너무나 어두웠다.

버스는 베르겐 어시장을 지나 우리 일행들이 투숙해야 할리카트래벌 호텔에 도착했다. 여장을 풀고, 저녁식사는 닭고기 튀김에 쌀밥을 함께 하는 노르웨이 전통 음식을 먹었다.

내일의 일정을 위해 잠을 청했지만, 잠이 오지 않아 일행 몇 명과 함께 시내를 관광하면서 호프집에 들러 맥주 1잔씩 하면서 노르웨이 서민의 음주문화를 배우게 되었다.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 남녀 생면부지인 사람들끼리 맥주를 들이키면서, 담소도 하고 음악에 맞추어서 포크댄스도 서슴치 않게 추는 모습에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음주문화라고 생각했다.

안주없이 맥주잔을 마시면서 그날의 스트레스를 푸는 모습은 우리도 배워야 할 음주문화라 느꼈다.

중세건축 양식 갖춘 베르겐시
일찍 일어나 조식을 마치고 베르겐 시내를 견학하기 위하여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침부터 내리는 빗방울에 오늘 하루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 우려하는 가이드의 몸 놀림이 매우 안절부절 하는 느낌이었다.

먼저 들러본 곳은 베르겐의 역사유적지인 어시장이었다. 이 시장은 1,500년전부터 시작된 곳으로 싱싱한 활어회에서부터 염장기술에 의해 가공된 생선까지 모두 나와 있었다.

우리로 말하면 선착장 어판장과 젓갈단지와 유사한 곳이다. 깨끗하고 예쁜 도시, 항구 도시인 베르겐시는 역사 도시이기도 하다. 중세기 건축물은 베르겐식 건축양식으로 유럽의 국가들이 현재에도 베르겐 건축법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나무로만 지워진 11채의 건축물을 보면서 숙연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고가옥을 둘러보니 우리나라의 건축법과는 다르지만 보존하고자 하는 이 나라 국민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고가옥 뒤편에는 1,120년에 건축되었다는 마리아성당이 있었는데, 당시의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적인 산교육장이었다.

한센병을 처음 발견한 한센의 생가 앞을 지나면서 나병퇴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인류의 질병치료에 많은 공헌을 한사람의 태생지라 생각하니 노르웨이의 베르겐 시내가 더욱 친숙함이 들었다. 계속되는 비 때문에 이동하기가 힘들어서 우리 일행은 베르겐 백화점을 구경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