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이 꿈꾸는 참된 농민세상이 되길…”
옥당골칭찬릴레이 / 강상호씨 / 염산면
2007-02-15 영광21
“도시밥도 꽤나 먹었지요. 생활의 편리함은 더 나을지 모르지만 시골의 정감을 따라 올수는 없어요”라는 강상호(40)씨. 사람이 가장 큰 재산이란다.
가구공장, 청과물도매업, 방송국근무 등 그의 객지살이 명함이다. 일에 파묻힐수록 고향과 사람내음이 그리웠다. 그러던 차 2002년 갑자기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고 아예 고향땅 염산으로 짐을 싸들고 내려와 버렸다.
그렇게 시작한 농사일, 지금은 2만평의 논과 2천여평 밭을 경작하고 있는 프로농군이다. 하지만 몸으로 느끼는 농사현실이 간단치가 않았다.
“물가는 오르고 농촌에 젊은 사람은 없는데다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손해를 보는 세상이더군요.” 경쟁력 없는 개별농업인의 문제가 아닌 경쟁력의 싹을 잘라버리는 농업현실, “별 힘은 없지만 그러한 현실을 옳게 바꿔봐야겠다는 각오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꾸리게 된 것이 염산면쌀대책위였다.
뒤이어 염산 상계3구 영농회장, 염산면농민회회장, 영광군쌀전업농분과위원장이라는 농관련직책들이 그를 따라다녔고 2006년엔 염산면청년회장을 맡게됐다.
민족의 명절 ‘설’. 달이 덩그럴수록 마음이 더 크게 비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실향민들이다. 염산엔 실향민이 많다.
“2006년 청년회에서 실향민들을 모시고 금강산에 다녀왔습니다.” 이전 청년회 임원으로 있을 때 실향민들과 임진각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북녘 땅 한번 밝아보는 것이 소원’이라며 스치듯 건넨 한 실향민의 말이 가슴에 깊게 남았었다.
그리고 2006년 11월 2,600만원이라는 거금이 부담됐지만 3박4일로 40여분의 실향민들과 북녘 땅 금강산일대를 다녀왔다.
“청년회에서 휴경지 농사로 마련한 돈과 명절 굴비판매대금 또 실향민들의 십시일반과 군에서의 약간의 보조로 돈을 마련했죠”라고 밝히지만 정작 자신이 쾌척한 돈 천만원에 대해선 말을 아낀다. 부모님의 큰 병환과 더불어 그 또한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을텐데 말이다.
인터뷰 말미, 그는 또 다시 길을 나선다. “오늘 염산면 축구회 경기가 있고 또 저녁에 회의가 있죠.” 얼마 전 허리수술이 그를 집에만 붙들어 놓고 있으련만 사람 좋아하는 마음을 못 당하나 보다. 그런 그는 인간적인 진솔함이 가득한 농사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