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 냄새만으로 누군지 알아요”

옥당골 칭찬릴레이 / 류상효씨 / 영광읍

2007-03-02     영광21
늙음 그리고 아픔, 70평생 앞만 보고 달려왔다. 저 세상에 먼저 가버린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그리고 남겨진 건 말을 듣지 않는 몸뚱아리와 어느덧 안식처(?)가 돼 버린 1평 남짓 병상뿐이다.

그나마 간병사들의 손길이 고장난 몸을 대신해 주지만 마음 한켠 여운이 깊게 베어나는 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매일 기다려지는 것이 있다. 그 기다림은 내 몸하나 가누지 못 하는 현실에 작은 ‘희망’으로 재포장돼 버린다.

조금 있으면 저 병원 문으로 기다리는 그가 올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푸르게 배인 미소는 안정제가 되고 따스하게 건네주는 말은 치료약이 될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각각 독특한 냄새가 있습니다. 눈감고 냄새만 맡아도 누군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라는 공립영광노인요양병원 류상효(36) 병원장.

그는 회진을 돌때면 환자들의 손을 꼭 잡아주고 볼에 뽀뽀를 해준다. 그것은 몸이 아파 마음의 여유마저 잃어버린 나이드신 환자들에게 큰 위안과 힘이 된다.

하지만 “오히려 제가 힘을 얻는걸요”라는 그. 특히 도시지역에서 느끼지 못하는 시골만의 정감이 자칫 메말라버리기 쉬운 병원생활에 여유를 준다.

더불어 좋은 공기, 맛있는 음식의 영광살이가 자신에게는 훨씬 잘 맞는 옷이란다.
하지만 집이 서울인 그에게 영광살이는 처음부터 원했던 건 아니였다.

“영광은 의사들의 군복무라 할 수 있는 공중보건의 때문에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솔직히 수도권 쪽을 원했지만 배정받은 곳이 영광이었다.

곧 전역을 앞두고 있지만 영광과 맺은 인연의 깊이는 앞으로도 지금의 자리에 계속 있게 할 거란다.

2005년 7월 병원 개원과 함께 시작한 영광살이가 처음부터 녹녹한건 아니었다. “처음엔 모든 것이 부족했죠. 병원관계자들이 직접 쓸고 닦고 못질해가며 하나씩 꾸려갔습니다.”

환자들을 돌보고 간호할 숙련된 인적자원과 진찰과 치료를 위한 의료장비 등이 턱없이 부족해 밤늦은 퇴근은 예사고 응급 상황시 한밤중에 뛰어 나온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또한 병원장이라는 무게감을 병원가족들에게 먼저 마음으로 다가가 포옹해 주고 고민을 함께하는 속에 자연스럽게 풀려갔단다.

이처럼 부드럽지만 강단진 그. “어머님만은 저를 믿어 줬죠.” 고등학교 내신 8등급이였던 그에게 의대는 높은 벽이었다. 하지만 비뚤어져 가는 자신을 보며 몰래 훔치시던 어머니의 눈물이 오늘의 그를 있게 했단다.

그는 신경전문의이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 그를 찾으면 “어이구 어서오세요”라며 문까지 뛰어나가 두 손부터 다 잡는다. 그리고 환자는 그의 기술적 치료보다는 얼굴에 배인 푸른 웃음과 손을 통해 전해지는 따스함에 아픔의 크기가 작아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