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게 보이는 식물도 치열한 보호본능 소유

백용인의 난과의 만남 26 / 난들의 전투

2007-03-15     영광21
산이나 들, 집에서 기르는 화초들까지 식물들은 참 평화롭게 살아갈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그들만의 삶을 쟁취하기 위한 자기방어의 작전을 그때그때 수행한다.

식물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로는 수많은 종류의 곤충, 곰팡이, 바이러스, 인간을 포함한 동물 등의 다른 생명체로부터의 위협과 특히 생태계 파괴에 대한 위험까지 감수하며 이들과 맞서 싸우면서 살아가고 있다.

동물들이 모여 살듯이 식물도 같은 종끼리 군락을 이루는 것은 어려운 환경을 함께 이겨 나가자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 개체간의 대화수단이 발달하게 됐다.

식물은 외부의 위험을 피해 움직일 수 없지만 병해충을 인식하고 예방하는 방법이 특이하게 발달돼 있는데 한 잎사귀가 벌레의 공격을 받으면 그 잎사귀는 힘없이 먹히면서도 건전한 잎들에게 적의 공격을 알려 이에 대처하기 때문에 숲은 항상 푸르고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활짝 핀 꽃의 향기는 벌과 나비를 부르기 위함이지만 대부분의 향기는 잎에서 나는 것으로 숲속의 신선한 공기도 식물들의 끊임없는 대화일 수 있다.

식물은 다량의 향기를 수시로 발산해 자신을 보호하고 주변을 인식하며 그들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옥수수와 면화는 해충이 자신을 가해하면 말벌이 좋아하는 특수한 기체를 발산해 말벌이 달려와 벌레를 처단하게 하고, 콩과식물은 해충이 침입하면 맛있는 수액을 바깥쪽 잎에다 많이 보내 무당벌레가 날아와 해충을 퇴치하게 한다.

수수는 자신의 잎에 담배나방이 알을 낳으면 화학물질로 말벌을 유인해 담배나방의 알 옆에 말벌이 알을 낳게 하고 이 알들이 부화해 담배나방 애벌레가 수수의 잎을 가해할 때쯤 말벌의 애벌레가 태어나 담배나방의 애벌레를 잡아먹게 해 자신을 보호한다.

특히 난은 휘발성 화학물질인 재스민이라는 향기를 사용해 벌레의 공격을 알리는데, 손상된 부위에서 생산된 재스민이 주변으로 날아가면 다른 난들은 곤충이 싫어하는 물질들을 축적해 공격에 대처하게 된다.

곤충을 쫓는 물질중 대표적인 것은 소화를 억제하는 효소이다. 이는 벌레의 입맛을 떨구어 다른 곳으로 가도록 하지만 소화억제제가 들어있는 잎을 계속 먹은 벌레는 성장이 느려지고 오래 살지 못한다.

특히 춘란의 잎 가장자리에는 규산염을 함유한 톱니 같은 날카로운 거치가 발달해 있고 잎 가운데도 온통 뾰족한 털로 덮여있어 해충의 접근을 원천봉쇄하고 있다. 또한 가녀린 잎이 바람에 계속 흔들거려 나방들이 알을 낳을 기회를 주지 않고 있기도 하다.

자연상태에서 자란 난은 이런 대화와 방어방법으로 벌레의 침입을 스스로 막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난을 재배할 때는 화학비료와 농약, 보호된 환경 때문에 재스민 같은 신호물질 생산능력과 자체방어력이 약해지므로, 난을 기르는 장소를 자연상태와 유사한 재배환경으로 조성해 준다면 건실하게 자라 농약을 적게 사용해도 잘 기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