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월에서 나고 자라, 지금은 생활터전”

옥당골 칭찬릴레이 / 낙월면 / 송정남씨

2007-04-20     영광21
염산 향하도에서 여객선으로 1시간10분 거리, 그나마 하루 두 번 있는 배편이 육지와의 유일한 연결고리인 섬 낙월도. 96년 공직생활을 낙월면사무소에서 시작해 10여년이 넘는 시간을 지금껏 줄곧 낙월을 벗어나 본적이 없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낙월도는 제 고향입니다. 낙월초등학교를 졸업했고 현재는 부모님이 계신 곳이자 내 자신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 곳 이죠”라는 낙월면사무소 송정남(35)씨, 학창시절 목포생활을 제외하곤 그에게 있어 낙월도는 삶의 근거이자 인생무대이다.

“물론 젊은 나이에 육지생활에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하지만 ‘나고 자라고 또한 부모님이 계신곳’이라는 가치가 모든 판단의 기준을 뛰어넘는단다.

그런 그에게 낙월도는 특별할 수밖에 없기에 애정 또한 남다르다. “제가 칭찬 받을 만한 일을 했나 싶어 부끄럽기만 합니다”애써 손사래를 치지만 “저 친구가 공무원생활 하기 전에도 93년부터 3년간 초등학교 구청사에서 애들을 모아다가 야간 자율학습을 했었당께”라는 주변의 전언은 그의 고향사랑의 마음을 엿보게 한다. 이에 더해 공직에 들어와서는 “섬주민들이 대부분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해서 작은 짐 하나 운반하는데도 힘이 들지요”그의 관용차는 섬 어르신들과 주민들에 편의제공 및 생필품 운반 등의 전용차가 돼 버렸다. 또한 상낙월청년회 회원으로 써 여름철 방역활동과 매년 섬을 찾는 관광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해수욕장, 마을 청소 등은 기본이라고.

“내가 태어난 고향에서 고향을 챙기고 봉사하며 공무원으로써 고향 살림에 작은 보탬이 된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이처럼 낙월면 행정을 책임지는 공직자로써의 대민 활동에서부터 온갖 궂은일을 마다않는 봉사활동까지, 그의 낙월사랑의 마음과 행동은 날을 더해가고 있지만 마음 한 켠 아쉬움도 크게 밀려온다.

“한때는 우리면의 인구가 2~3천명이 넘는 적도 있었지요” 지금은 매년 크게 감소해 노인들만 고향을 지키고 있는 상황, 또 이에 대한 특별한 대책이 없는 것이 마음의 빈공간을 더 크게 한단다. 이에 더해 작년에 그에게 닥쳐온 큰 수술로 인해 건강의 적신호가 켜져 예전만큼 몸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52개 유무인도로 이뤄진 영광군 유일의 도서지역 낙월면, 모든 것이 부족하고 불편하지만 섬사람들은 서로를 보듬으며 하나씩 채워가고 있다. 칠산바다 멀리 노을이 전해주는 정서적 안정은 마음의 풍족함을 안겨준다.

“저보다 더 성실하고 참 봉사를 실천하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 못난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그, 따스한 마음이 다 전해지기도 전에 “앞으로 한결 같은 자세와 마음으로 위민행정을 실천하며 주민의 손과 발이 될 수 있도록 더더욱 성실히 근무 하겠습니다”고 당찬 각오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