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규제' 그의 딸 박근혜는 '규제완화'
데스크칼럼
2007-04-26 영광21
이것이 사리에 맞고 온당한 처사인가를 따져보기 전에 각종 규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유신독재의 본산인 박정희이다 보니 그의 딸이 규제완화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현실이 가히 역설적이라고 하겠다.
박정희식 개발독재체제에서 규제는 '억압'과 '통제'를 하기 위한 도구였다. 지금 생각하면 가당치도 않아서 어처구니가 없는 통행금지와 두발단속에 복장규제까지 했으니 그저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박정희식 규제가 전부 부정적인 측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산업과 경제에 대한 규제는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개발에 강한 추진력을 부여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단지 사치를 위한 소비품의 규제나 지나친 임금격차의 억제, 농지이용에 대한 규제와 같은 것은 지금도 사회통합 차원에서 보면 여전히 유효한 면이 있기는 하다.
그때 그 시절 수많은 규제들은 개별적으로 공로와 과실을 떠나서 무한한 권력을 꼭짓점으로 사회를 완벽하게 통제하는데 동원된 수단이었다. 어느 사회를 따져 말할 나위도 없이 규제는 억압과 통제라는 속성이 한 축을 이루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 속성이 더욱 겉으로 뚜렷하게 드러난 것은 군사독재시대의 권위주의적 유산이기 때문이라 해도 정도에 어긋난 말이 아니다.
독재자였던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그의 딸이 상반된 이름으로 극복한다고 하니 박수라도 쳐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작 겨냥하고 있는 대상이 권위주의의 유산인 불필요한 통제들이 아니고 사회를 보다 공정하고 균형있게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장치여서 몹시 심기가 불편해진다.
이미 부작용이 나타날 만큼 나타난 무분별한 개발과 투기를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확대하는 결과를 낳을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도시용지를 지금보다 2배로 늘리기 위해 그린벨트 등 토지이용 규제와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하는 것이 그 첫 번째를 장식하고 있다.
그 내용대로 한다면 도시과밀과 주거, 교통, 환경, 교육의 심각한 부작용이 뒤따를 것이 명확해 보인다. 또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면 재벌의 문어발식 기업확장과 대물림으로 이어지는 소유 지배구조를 견제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사라지게 된다. 재벌에게 자유를 선물하고 그 특권을 공고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국내 사회경제질서를 훼손하고 혼란을 가져오는 경제자유구역 및 특구정책을 확대하겠다는 내용도 납득할 수 없다. 이 같은 규제완화는 시장만능주의를 부추겨 재벌과 일부의 특권층에게 부를 편중시켜서 사회양극화의 심화와 공공성의 해체를 가져올 참으로 위험천만한 미숙한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박정희라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권위주의적인 규제의 유산을 남겼다. 이제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그의 딸은 '규제완화'를 내걸고 그 유산을 극복하겠다고 한다. 정말 예상 밖의 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잘못된 정책으로 피해를 보는 쪽은 민중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