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노동자는 되기 싫어!"
독자투고 - 교단에서제목
2007-05-17 영광21
쉬는 시간이었기에 아이들이 무슨 소리냐며 서로에게 묻는다. 나는 "우리나라와 미국이 '자유무역협정'이라는 것을 맺으려고 하는데 농민들에게는 큰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에 협정을 반대하는 차량 선전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 해줬다.
한 학생이 자기 아빠한테서도 그 이야기를 들었다며 쌀값 보장이 필요하다는 제법 어른스러운 말을 하자 다른 학생들도 관심을 나타냈다.
시작종이 울려 더 이상 토론은 이뤄지지 못했고 각자 수업 준비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곧바로 공부를 시작하지 않고 몇분동안 침묵을 지키자 '선생님이 왜 그럴까?' 궁금해 하는 눈치였고 호기심을 보였다.
학급 아이들에게 "앞으로 커서 노동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했다. 30명중에서 딱 한 명만이 손을 올렸다.
노동자가 되고 싶지 않은 이유를 묻자 '힘드니까' '돈을 많이 벌지 못해서' '천대받고 살기 때문에' '보람을 느끼지 못해서' 등의 대답이 나왔다.
어떤 직종의 사람들이 노동자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공사장인부, 청소부, 농·어업 종사자, 공장근로자 등 많이 배우지 못해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며 "노동자는 되기 싫어!"라고 외친다. 아이들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머리가 멍해짐을 느꼈다.
그러면 "선생님이란 직업은 어떤가?" 했더니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병원에 근무하는 노동자, 철도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 공무원노조, 대학강사노조, 조종사로 구성된 항공노조 등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노동자들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내 설명에 아이들의 눈망울이 달라짐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사회는 여러 부분에서 노동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왜곡된 의식구조를 종종 보여준다.
학생들 또한 어렸을 때부터 알게 모르게 노동자가 천대받고 기피해야 할 대상임을 주입받으며 자란다.
아이들이 성장하면 원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은 노동자로 살아야 할 세상이다. 그런 학생들이 노동자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교육노동자로서 지금까지 잘못 가르치고 있었다는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제사정이 어려운 요즈음 일부의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말이나 매스컴에서 노동자들의 과격한 단체행동 때문에 기업경영이 힘들고 나라가 혼란스러워진다고 호들갑을 떤다.
오늘의 농촌문제가 집단행동이나 농민들이 게으르고 일을 안 해서 발생한 것인가? 더불어 살아가는 바람직한 세상을 만들려면 자동차나 전자제품 등을 많이 수출하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농업을 개방해 위기를 맞게 될 농촌에 대한 보전과 장기적인 대책이 우선돼야 한다.
농부이기도 하고 교단 22년을 모두 전남의 농촌지역에서 근무했던 나에게는 농업문제가 현실이고 미래다. 농사짓는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아이들, 농촌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어른들, 시골이지만 활기차고 웃음소리가 넘쳐나는 학교, 노동자여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이런 꿈을 꾸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 아닌가?
황인홍 교사<백수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