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에 미국 국가연구위원회(NRC) 산하의
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BRWM)가 발간한 정책보고서는
우리나라의 정책결정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여러 제언들을 담고 있다.
이 보고서는 핵폐기장 부지선정 문제에 있어
크게 두 가지 축에 기반해 접근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데,
하나는 일반대중과 모든 것을 완전히 터놓고 논의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의 과학자들에 의한 동료심사를 활용하라는 것이다.
전자에는 일반대중,
특히 부지선정 예상지역의 주민들에게
핵폐기장에 관해
충분하고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하고,
해당 기관의 의사결정 구조를
독립적이고 투명하게 하며,
정책결정 과정에
일반시민의 자문과 직접참여를 보장하는 것이 포함된다.
특히 핵폐기장에 대한 일반대중의 거부감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가능한 선택지들을 반드시 복수로 제공한 상태에서
논의를 진행해야 하며,
이미 결정된 내용이라도 나중에 다시 되돌릴 수 있도록
정책과정을 단계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도 빼놓지 않고 있다.
그리고 후자에는
핵관련 기구의 자체인력이 만들어낸 미발표 연구보고서에만 의존하지 말고
동료심사를 거쳐 학술지에 이를 발표하려 노력하며,
연구에 참여하지 않았던 외부의 독립 과학자들에 의해 검증받는 과정을 거치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와 관련해 2002년 5월에 영국 왕립학회가 내놓은 짧은 보고서의 제언도 주목할 만한데,
이 보고서 역시
독립적이고 보다 투명한 기구가 핵폐기물 관리를 담당해야 함을 지적하면서,
특히 핵폐기물 문제에 대한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신규 핵발전소 건설 결정을 유보해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홍보자료는 현재 부지선정 과정에 있는 핵폐기장이
마치 중,저준위 폐기물만을 저장하기 위한 것인 양
오도할 우려가 매우 높으며,
외국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선전되는 핵폐기장들이
중,저준위와 고준위 폐기물 중 어느 것을 보관하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밝히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는 핵연료 재처리를 고려하고 있지 않으므로
사용후 핵연료(spent nuclear fuel, SNF)는
응당 고준위 폐기물에 포함되어야 하는데도,
우리나라에는 고준위 폐기물이 없다는 식의 말장난도 서슴지 않는다.
2016년부터 해당 핵폐기장에 SNF의 중간 저장을 예정하고 있고
이를 위해서는 잦은 육로,해로 수송이 불가피함을 감안한다면,
SNF를 (발전소 부지가 아닌) 별도의 장소에 모아 관리하는 국가에는 어디어디가 있고
그곳에서는 SNF의 수송을 어떤 방식으로 하며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를 소상하게 알려주어
지역주민들의 판단에 참고하도록 해야 마땅할 텐데,
이런 얘기는 일언반구도 찾아볼 수 없다.
(예컨대 독일에서는 1985년 이후
SNF를 프랑스에서 재처리하지 않고
직접 처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네 개의 건식 중간저장 시설을 별도로 운영해 왔는데
운송차량의 표면 오염 문제가 대두되면서
1998년부터 3 년 이상 SNF의 수송이 중단되었던 적이 있다).
또한 핵폐기물을 장기적으로 보관할 때
어떤 변화가 생길지에 관한 연구에서
외국의 정책보고서들이 하나같이
과학기술의 불확실성과 현존 지식의 한계,
추가 연구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의 홍보자료들에는
전혀 위험하지 않고 100% 안전하다는 식의 호언장담만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단순한 정보 제공의 측면이 이럴진대,
의사결정 구조의 독립성, 투명성 확보나
일반시민의 정책참여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는 길게 말할 것도 없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