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종교를 강타할 태풍과 스나미 프로테스탄트 사상의 영향 아래, 신학 논쟁이 고조되었으며 성서 번역판과 주석판들이 자유 및 개인적 표현의 조류를 타고 수면 위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유는 수면 위에 성서 비평이라고 하는 찌꺼기를 뿌려 놓았습니다. 새로운 개념들이 나타났으며, 자주적인 결정이 시대의 기조를 이루었습니다. 진보는 더 이상 부드럽게 밀려오는 물결이 아니라 청천 벽력과도 같은 파괴자였습니다. 개혁의 강력한 물결은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교리를 기초까지 휩쓸어 가고 말았습니다. 진화론, 여성 해방 및 ‘신도덕’과 같은 현대식 대체 이론들이 유목(流木)처럼 쓸려 내려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갔음을 말없이 증거하였습니다. 일부 프로테스탄트 나라들의 개인 중심적인 종교는 개개인을 자기 혼자만의 외로운 믿음의 섬에 좌초시켜 놓고 말았습니다. 독일의 시사 주간지 「데어 슈피겔」은 영국이 주요 세계 강국이 되도록 박차를 가한 것은 캘빈주의 이념이었다고 기술하였습니다. 19세기부터, 미국, 독일 및 영국의 정치 세력 증가는 사회 혁신을 가져온 힘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에 대한 기회 균등이 강조되었습니다. 종교 개혁의 주류 내부에 생긴 소용돌이가 곧 현대 사회주의의 선구자가 되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회적 책임에 대한 정치의 인식은 복지 국가로 향하는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특히 프로테스탄트의 영향력 아래, 세속 당국자들은 점차적으로 출생, 사망, 결혼, 이혼 및 상속 등을 법적인 측면에서 통제하였습니다. 현재 가톨릭 국가의 이혼 및 합법적인 낙태의 허용 여부는 프로테스탄트 국가에서 허용하는 것과 대개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프로테스탄트 사상의 두 보루인 미국과 영국은 성서 예언에 나오는 두뿔 달린 짐승으로 함께 성장하였습니다. (계시록 13 : 11) 처음에는 국제 연맹으로 불리었던, 20세기 정치계 거물인 국제 연합은 프로테스탄트 국가의 주도하에 발전하였습니다. 해변에 만조시의 최고 수위점을 남기고 썰물이 빠져 나가면, 또 다시 밀물이 밀려올 때를 상기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16세기의 종교 개혁은 오늘날 우리가 여실히 볼 수 있는 흔적을 남겨 놓았습니다. 더우기 우리가 종교적 변화의 최종 물결의 문턱에 서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습니다. 이 물결은 이전의 모든 격변을 능가하여, 거짓 종교를 영원히 쓸어 버리고, 살아 있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를 살아남을 것입니까? 전세계적으로, 조직화된 종교에 대한 불만이 개인이나 정부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러한 불만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종교는 종종 영적인 권한을 넘어서서, 관복과 성직복을, 왕관과 주교관을, 홀과 십자가를 혼동시켜 놓았습니다. 전직 서독 수상 헬무트 슈미트는 종교의 정치 개입에 대해 “이런 일이 무한정 용인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 논평하였습니다. 파리의 「르 피가로」지는 교회의 “정치 간섭”이 너무 지나치기 때문에 “정치가 종교에 간섭하는 상황이 벌어질 위험성 마저 있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인도에서 이집트와 미국에 이르기까지, 폴란드에서 니카라과까지, 말레이시아에서 칠레까지, 정치와 종교 사이의 지루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놀랄 일도 새로운 일도 아닙니다. 계시록 17장은 거짓 종교 전체를 가리켜 땅의 정치가들과 음행을 하는 음녀, 즉 ‘ “큰 바벨론”으로 묘사합니다. 더 나아가, 4절에서는 큰 바벨론이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있다고 자세히 묘사합니다. 그 종교 제국은 탐욕적이고, 사치에 빠져 있으며, 재물이 흘러 넘칩니다. 16세기에, 가톨릭 교회의 휘황찬란한 보물 창고는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0세기에 모든 종교들이 소유하고 있는, 보석의 찬란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들은 이미 그러한 부에 대해 탐욕스런 눈초리를 던지고 있습니다. 알바니아에서는 2,000개 이상의 회교 사원, 교회 및 다른 종교 건물들이 국유화되거나 파괴되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종교는 커다란 실망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종교는 연합하지 못하고 조각조각 분리되어 있습니다. 독일의 한 일간지는 “증오에 다다르고 있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경쟁”을 지적하였습니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지는 서로간의 차이를 메워보려고 계획된 초교파주의 운동마저도 “상호 불신”하는 입장 곧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화해할 수 없는 적대감”에서 시작하였다고 기술하였습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비젤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인용 보도하였습니다. “나는 종종 우리가 실패하였다고 생각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종교가 발단이 된 전쟁이 또다시 거의 전대륙을 휩쓸게 될 것이라는 말을 1945년에 했다면 아마도 우리는 그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소요를 유발하고, 전쟁을 자극하거나 묵인하는 종교는 거짓 종교입니다. 성서 계시록 17장은 모든 거짓 종교의 운명에 대해 의문의 여지를 없애 줍니다. 17장 16절에는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네가 본바 이 열 뿔[국제 연합 조직 내의 정부 세력들]과 짐승[국제 연합]이 음녀[거짓 종교]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놀랍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거짓 종교의 최후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거짓 종교의 행위, 관습, 전통 및 특권은 곧 사라질 것입니다. 마치 16세기 당시 사람들이 가톨릭 교회가 물결에 휩쓸릴 것을 예상하지 못했듯이, 오늘날에도 역시 거짓 종교가 몰락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16세기 종교 개혁의 물결은 범람했습니다. 교회의 부는 백성들에게로 돌아갔으며, 그 권력은 군주에게 돌아갔습니다. 오늘날에도 나라들은 거짓 종교의 최후의 멸망을 주도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어떠한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종교 단체를 속속들이 조사해보고 심각하게 살펴보기 바랍니다 우리가 연합한 종교가 대표하는 바는 모든 면에서 성서와 일치합니까? 전세계에서 일관성있는 종교인으로서 행동으로 증명하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속한 종교는 “큰 바벨론”, 즉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의 일부일수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속한 종교가 성서에 표준에서 빗나가 있고 그들의 생활이 교직자들의 행동이 비리로 얼룩져 있고 물질을 탐욕적으로 추구하고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면 계시록 18:4에 있는 이러한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거짓 종교에 최종 멸망을 가져올 폭풍우와 상상못할 엄청난 해일과 스나미와 같은 재난이 밀려오고 있음을 심각하게 고려할 때입니다 수평선 위에 그 해일이 밀려오는 것이 보입니다. 그것이 청천 벽력과도 같은 멸망을 가져올 때, 우리는 어디에 서있을 것입니까? 무관심의 계곡에 서있을 것입니까? 세속 권력의 언덕 위에 있을 것입니까? 아니면 여호와의 산 위에 서있을 것입니까? 안전한 장소는 오로지 한 곳 뿐입니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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