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이 원자력 공업 개발의 필요성을 느끼고 본격화하기 시작한 시점이 1970년대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74년은 북의 공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시기였고, 그만큼 전력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때였다. 그러나, 이북은 2,600만 톤의 우라늄 원광 매장량을 갖고 있으면서도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소요되는 막대한 자본과 기술 때문에 건설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선중앙통신 상보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 어느 나라도 우리에게 경수로를 팔아 주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먼저 카나다, 세웨리에, 프랑스 등 서방나라들에서 돈을 주고 발전된 경수로를 사오려고 하였으나 미국의 코콤에 의한 방해로 그것을 실현할 수 없었다." 한편 NPT 조약은 각 조약당사국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안전협정을 맺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북은 조약상 교섭기간 180일과 유보기간 8개월 그리고 1차 연장기간인 1988년 6월까지 핵안전협정을 체결하지 않았다. 이북은 미국이 핵무기로 자신들을 위협하지 않고, 핵안전협정 체결 후 이북에 대한 핵위협이 있을 경우 협정의 권리를 유보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선행조건을 제시했으나 미국은 선례가 된다는 이유로 이북의 요구를 거절했다. NPT에 가입하고도 핵안전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나라는 이북 뿐 아니라 프랑스, 중국 등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북이 핵안전협정을 체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핵무기 개발 의혹을 제기하고 국제적 압력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이북이 5메가와트 원자로의 설계에 착수한 것은 1980년 7월이었으며, 이 원자로는 1987년 12월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5메가와트 원자로는 경수로가 아닌 흑연감속원자로였다. 흑연감속원자로는 경수로와는 달리 핵발전용으로는 비효율적이다. 반면 핵무기 제조용 플루토늄 생산이 가능하여 핵무기 원료를 쉽게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성능 좋은 경수로를 확보하는데 국제적 어려움에 처한 이북의 상황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흑연감속로는 이북이 추구하는 '민족자립경제'의 원칙에도 부합된다는 사실이다. 이북에는 양질의 천연 우라늄이 2,600만 톤이나 매장되어 있다. 이북이 이 원자로를 이용하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방대한 양의 천연우라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원자로는 천연우라늄 연료로 사용하고 세계적으로 널리 공개된 것이므로 이북이 배우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었다. 한편 이 원자로는 감속재로 경수와 흑연을 사용할 수 있는데, 흑연 역시 이북에는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즉 이북이 흑연감속로를 선택했던 이유는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서방의 기술봉쇄로 자기 기술과 자기원료(우라늄과 흑연)로 개발 가능한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각국이 원유 수입으로 악화되는 무역 수지를 개선하기 위해 전력원으로 원전의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 70~80년대 상황입니다.) 이런 국제적인 추세에 비추어 보더라도 석유나 가스가 생산되지 않는 반면에 질이 좋은 천연 우라늄이 풍부한 이북이 핵발전 시설을 갖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70~80년대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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