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전국 반나절 생활권 시대 개막'이라고?
icon 함성주
icon 2003-01-01 22:36:38  |  icon 조회: 2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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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이라고 뉴스들이 거창하네요.
내년엔 베트남 어느 바다에서 석유를 퍼올려 우리 나라로 들여올 수 있다고 하는데, 내심 궁금한 것은 그 석유를 얼마에 들여오는가 하는 것과 그렇게되면 기름값좀 싸지나 싶은건데 그런것에 대한 언급은 없고 그냥....남의 땅에 우리 돈 들여 기름 캐게 생겼다는 말 뿐이네요.
또 하나, 고속전철도 내년에 개통한다는데, 여기서 KBS 저한테 딱 걸렸습니다.
고속철은 시속 300km 속도로 달려서 서울-부산을 두시간반정도면 갈 수 있답니다. 그래서 전국 '반나절 생활권'시대가 열린답니다.
KBS2TV 여덟시 뉴스에서는 앵커라는 사람이 그렇게 얘기하고, KBS1TV 아홉시 뉴스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인터뷰에 응한 고속철에 관계되는 양반이 그리 말씀하시대요.

반나절?
반나절이 얼마만큼의 시간인지 아세요?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시간의 구분을 '일할 수 있는 볕의 있고 없음'으로 했다해도 과언은 아니지싶습니다.
그러니까 동터서 점심먹을 때 까지가 '한나절', 점심먹고 일을 마친 후 저녁먹을 때 까지가 또 '한나절'이지요.
그럼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두나절'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하루'입니다. 점심을 기준으로 오전 나절을 '아침나절', 오후 나절을 '저녁나절'이라합니다. 해가 지고 난 뒤의 시간은 '밤'이거나 '새벽'이지요. 밤도 '이른밤' '늦은밤' '깊은밤'으로 나뉘기도하지만 늘 비슷한 시각에 비슷한 자리를 지나는 해가 아닌, 낮에도 나왔다 아예 얼굴도 내밀지 않는 달을 기준으로하기엔 그 구분이 명확하지도 않을 뿐더러 자지않고 밤을 지키는 사람도 없었으니 뭐 따로 구분할 필요도 없었을겝니다.
밤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명체이기에, 낮엔 일하고 밤엔 자는 매우 생태적인 삶을 산 것이지요.

어쨌거나,
'전국 반나절 생활권'이 적절한 단어 조합이 아니라는 얘기를 할까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이용되던 '전국 1일 생활권'이라는 언어를 상대적으로 변형시킨 것 같습니다.
그 때의 '전국 1일 생활권'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것이 '부산가서 점심먹고 서울에서 저녁먹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회귀'가 전제되는 말이었지요.
그렇다면 '전국 반나절 생활권'이란 말은 어떤가요.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속철을 이용해서 두시간반이 소요되니까 얼추 세시간 정도의 의미인 '반나절'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시 서울까지 돌아가려면 축지법으로도 곤란하고 관심법의 대가인 궁예도 시도해본 적 없는 '유체이동술'을 사용해서 돌아가기에도 빠듯한 시간입니다. 물론 서울에서 부산 가는 목적이 단순히 '고속철 타보기'였다면 그것은 잘못된 표현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동 이외에 애초의 목적인 사무나, 만남을 갖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지요. 그러니 '전국 반나절 생활권 시대 개막'이라는 거창한 말은 '반나절'의 의미를 잘 모르고한 말이거나, 엄청나게 과장된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좀 다른 생각을 해보면, 고속철이 없는 호남이나 강원지역은 그 생활권역에서 제외되는 것이고, 통일되면 '하루 반나절 생활권 시대'에서 '전국 이틀 생활권 시대'로 퇴보할 수도 있는건가요?
언론이 백성들 삶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서 단어 하나에도 심사숙고가 따라야할 것입니다.

단어 하나 하나를 다 떼서 매우 관대한 마음으로 해석하면,사전에서 그 하나하나의 단어들을 찾아보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닙니다.
언어의 사회성을 완전히 무시해버린다면 말입니다.

-전남도민, 영광군민,홍농읍민, 우리동네사람 함성주


생활권(生活圈)[-꿘] 명사. 지역의 주민이 일상 생활을 하는 데 있어, 행정 구역에 관계 없이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범위.

생활(生活)명사. 1.살아서 활동함. 2.생계를 유지하여 살아 나감. 3. 어느 일정한 조직에 딸리어 그 구성원으로 활동함. 4. 어떤 행동이나 활동을 하며 살아가는 상태.

두산동아, 동아 새국어사전, 이기문
2003-01-01 22: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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