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불금, 지각비, 올비에 눌려 죽는 여성들
선불금, 지각비, 올비에 눌려 죽는 여성들
  • 영광21
  • 승인 2002.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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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여성의 전화 - <영광21> 공동캠페인 ②
성매매된 여성의 현실알기

성매매 근절 움직임이 아주 작게나마 일고있는 것은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다. 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기지촌, 청량리 등 성매매 현장에서 '칼침' 맞을 각오로 피해여성 구출에 나섰던 현장활동가들과 성매매된 피해여성들의 생사를 건 탈출과 자립의지, 그리고 많은 피해여성들의 죽음이 있고서이다.

선불금은 피해여성의 올가미
최근 한겨레신문에 보도된 티켓다방은 '청소년 성매매의 소굴'이라는 기사는 빚이 피해여성을 옭죄는 올가미가 된다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아름이(가명, 17세)는 올해 초 가출을 한 뒤, 친구가 일하고 있던 여수의 한 다방을 찾았다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이 첫 출발이었다. 처음에는 다방 주인이 “가게가 너무 바쁘니 며칠만 도와달라”고 사정해 주로 다방 안에서 서빙 일만 도왔다. 주인은 옷과 화장품을 챙겨주고, 용돈도 줬다. 그게 덫이었다. 며칠새 자신도 모르게 500만원을 빌린 것으로 돼있었고, 다방 주인은 얼굴색을 바꿔 “위약금 30%를 더한 650만원을 당장 갚던지, 티켓영업을 나가라”고 아름이를 윽박질렀다.

그날부터 아름이는 오전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매일 10건 정도의 전화를 받고 차 배달을 나갔다. 차 배달에는 성매매도 포함돼 있었다. 티켓은 1시간에 3만원, 화대는 10만~15만원이었고, 받은 돈은 꼬박꼬박 주인에게 갖다 바쳤다.

그러나 출근시간에 1시간 늦으면 ‘시간비’3만원, 하루 결근하면‘올비’30만원이 빚으로 더해졌다. 추근대는 손님과 실랑이를 벌이다 10분만 늦게 돌아와도 시간비가 보태졌다. 밥값과 숙박비, 시간비와 올비, 선불금 이자를 제하고 나니 한푼도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매달 100만원 이상씩 빚이 불어났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티켓영업을 나갈 때마다 여관까지 데려다 주는 '삼촌’(티코맨)이 늘 지키고 있었다.

피해여성들은 청소년기에 티켓다방을 통해 성매매업소에 발을 들여놓는다. 아름이 처럼 처음엔 선심쓰듯 옷이며, 화장품을 사주다가 2백~3백의 빚을 씌워버리고 평생의 올가미로 사용한다.

현대판 노예증서 '차용증'
청소비, 전기세, 낙태비용, 약값 등의 명목으로 선불금이 눈덩이로 불며 빚이 되고 심지어 단속에 걸려 내는 벌금도 여성들에게 떠넘기고 생리나 병으로 일을 못한 날의 하루벌이도 빚으로 친다. 맞보증을 서게 해 한명이 도망치면 남은 사람이 그 몸값까지 빚으로 떠안도록해 상호감시 체제를 만들어 놓는다.

이처럼 '포주 마음대로' 계산법 때문에 빚을 갚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처음에 200만원으로 시작한 선불금은 대부분 1년안에 1000만원이 넘게 되며 이때부터 발목이 묶인 채 여기저기 팔려 다니게 된다. 사창가로 넘어갈 때는 1000만~2000만원, 섬이나 이발소 등 열악한 곳으로 가면 4000만원에 팔리는 식이다. 차용증이 현대판 노예문서인 셈이다.

성매매 근절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군산 개복동 화재당시 성매매업소의 금고에서 나온 취업각서와 현금보관각서들은 피해여성들의 노예적 삶을 그리듯 말하고 있다.

화재때 숨진 김아무개(28세)씨는 "성관계나 그 모든 문제는 보호자나 그 외의 (다른)사람도 주인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제기하지 않을 것을 서명함"이라는 내용의 각서와 함께 2500만원의 빛을 지고 있었고, 신아무개(26세)도 3700만원의 빚이 있었다.

만약 여성이 도망치면 포주들은 곧바로 사기죄 등으로 경찰에 신고하고 경찰은 여성들을 붙잡는다. 물론 현행 윤락행위 등 방지법 20조는 '불법원인으로 인한 채권은 무효'로 규정하고 있지만 대부분 여성들은 이 법을 알지 못하고 여성자신이 스스로의 빚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잡힌 여성들은 고스란히 포주에게로 되돌려 진다. 그리고 그동안 사용했던 비용까지 빚으로 물리고 괘씸죄가 더해진 폭력이 난무한다.

E-6비자와 외국여성의 성매매
최근에 국제이주기구(IOM) 서울사무소가 IOM본부에 보낸 '한국으로부터 인신매매된 필리핀 피해자 조사보고서'가 공개되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이 보고서에는 4월부터 6월까지 경기도 동두천의 한 클럽에서 노예매춘을 강요당한 필리핀 여성의 증언과 일기가 함께 담겨있다.

E-6비자(예술흥행비자)로 공연을 목적으로 들어온 필리핀 여성들은 노출쇼에 동원되고 성매매를 강요받는다. 11명의 필리핀 여성중 한명이 쓴 일기중 하루의 기록은 피해여성들의 삶의 들여다 보기에 충분하다.
사장친구가 내가슴을 만지기 시작했다. 사장이 그 한국남자를 따라나가라고 했다. 나는 원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장은 계속 강요했다. 한국사람은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다들 섹스마니아(섹스광)같다. 하나님 도와주세요.(4월17일)

필리핀 대사관이 발벗고 나서지 않았다면 이 여성들은 돈 한푼 못받고 본국으로 추방당했거나 노예매춘에 내몰렸을 것이다.
특히 2001년 기준 E-6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여성(6971명) 가운데 과반수는 러시아를 포함한 옛소련계 여성들로 영어소통마저 어렵고 전국각지에 흩어져 있어 극단적인 성착취에 내몰릴 위험이 크다.

성매매된 여성이 지고 있는 빚은 갚을 의무가 없다. 도박빚과 마찬가지로 불법원인을 전제로 돈을 준 것 자체가 불법이다. 성매매는 인간성을 파괴하는 극단적인 폭력이다.
우리나라의 성매매된 여성의 수가 200만을 헤아린다. 전체여성인구의 10%이다. 10명중 1명은 성매매된 여성이라는 이야기이다.

거기에 유리방, 노래방, 가요주점, 청소년유인 성매수(원조교제), 일반음식점 등을 통한 변종 성매매의 경우까지 포함하면 더욱 많은 여성들이 성매매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더 이상 성매매는 특수한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눈가리고 아웅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