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악산 정기받아 노년의 꿈 새로 설계
언악산 정기받아 노년의 꿈 새로 설계
  • 영광21
  • 승인 2007.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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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 탐방 103 - 신창경로당<염산>
연일 내리는 비로 인해 잔뜩 찌푸린 하늘이 농민들 마음처럼 어둡기만 했는데 모처럼 비가 그치고 잠자리 떼 노니는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아이들처럼 들뜬 마음으로 어르신들을 만나보고자 길을 재촉한 지난 토요일.

지금으로부터 90여년전 방조재가 축조되면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염산면 염창마을. 이곳은 영광에서 염산으로 향하다 보면 염산면 들머리인 돌팍제를 바로 지나 왼쪽 편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새로운 마을이라는 의미로 ‘신창’이라 불리우는 이곳 마을에는 현재 33가구 70여명의 주민들이 벼농사와 고추, 담배 등을 경작하면서 정을 나누며 함께 하고 있다.

2001년 9월 주민들과 출향인들이 아름다운 뜻을 모아 영광군의 지원과 함께 준공된 신창마을 경로당(회장 김경연)은 큰방 2개와 거실이 전부인 아담한 규모지만 전체 주민의 절반에 육박하는 36명의 남녀 어르신들이 노년의 꿈을 새로이 설계하면서 풀어나가고 있다.

군에서 지원해 주는 연료비와 주민들의 찬조금으로 꾸려가는 경로당 살림이 그다지 넉넉해 보이지 않는다.

“농사에 여념이 없으신 어르신들을 위해 안마기 등을 준비해 드리고 싶지만 마을 형편상 죄스러운 마음뿐”이라는 김희남 이장의 말을 통해 농촌의 현주소를 다소나마 읽을 수 있었다.

언악산 줄기에서 뻗쳐 나온 막봉우리가 마을을 안아주는 형국이지만 옛날 일본사람들이 마을의 정기를 끊고자 산의 맥을 끊어놓아 지금도 지관들이 한숨을 쉬고 간다는 신창마을.

하지만 어느 지역 못지않은 높은 교육열로 자녀들의 학력수준이 높고 출향인사들도 대체로 잘들 살고 있다고 김희남 이장은 전한다. 하지만 하루에 단 두번 들어오는 버스사정 때문에 어르신들의 몸이 불편해도 병원에 제대로 가지 못하고 장 보는 것 또한 많은 불편이 뒤따른다고.

오랜만에 함께 하는 따사로운 햇볕아래 경로당 넓은 앞마당을 온통 차지하고 몸을 말리는 수많은 붉은 고추들과 분주한 손길로 이들을 어루만지고 있던 이순님(74) 어르신이 눈에 들어왔다.

“고추농사가 어떠하냐”는 기자의 물음에 “비오기 전에 수확한 고추들을 말리고 있는데 대체로 괜찮지만 비온 후의 고추는 많이 버릴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며 미소를 짓는 어르신의 모습은 농촌의 작은 위안으로 다가왔다.

어려운 살림에도 늘 미소를 잃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면서 노년을 함께 하는 터전으로서의 신창경로당. 이곳은 마을 대소사의 중심에 서서 자기의 역할을 충분히 해나가고 있는 활기가 넘치고 정이 넘치는 따뜻한 보금자리였다.
박용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