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위대한 건축기술 보며 솟아난 경탄과 긍지
고구려의 위대한 건축기술 보며 솟아난 경탄과 긍지
  • 영광21
  • 승인 2007.09.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왜곡된 고구려 역사 이제는 바로 잡자"
고구려 역사탐방 기행문 ②

백두산은 관광코스를 개발시켜 천지를 보기에 정말 편했다. 계속 버스를 타고 올라간 뒤에 계단을 만났다. 졸본성의 계단보다 편하기는 했으나 너무 많았다. 1200개라…….

죽을둥 살둥 올라가자 제일 먼저 우리를 반기는 것은 한국어로 된 표지판. '국경분쟁으로…….' 나머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으나 그때 당시 느꼈던 감정은 분노와 끊임없이 치솟는 슬픔이었다.

본래는 고구려, 발해시대에 민족의 명산으로 일컬어지는 백두산이 '장백산'이라는 이름으로 빼앗겨 버리다니. 그러한 기분도 백두산의 천지를 보자 조금씩 풀렸다.

아름다운 자태로 성스러움과 신비로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백두산. 내려와서 기념품을 사려고 하니 우리들과 중국인들간에 백두산의 발음의 차이에 대해 논쟁하다가 중국인들이 그들의 발음인 장백산을 고수하려하는 모습을 보자 감정이 격해지려 했으나 누그러뜨렸다.

통화로 돌아오는 길에 그들의 말에 얼굴을 붉히며 억지 같은 말 밖에 부릴게 없던 나와 친구들의 모습에서 우리나라의 국사교육이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이렇게 계속되는 동북공정속에 아무런 대책이 없다면 우리의 후손들은 정체성마저 송두리째 뽑히고 말 것이다.

동북공정 대책없다면 정체성은…
이 문제는 여러방면에서 해결해야 하겠지만 특히 사회적 측면에서 다뤄야 하는데, 교육부에서는 영어 수학만을 강조되는 현행 교육정책을 개선해 국사뿐만 아닌 국어도 강조하는 방향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정부는 사익을 위한 정책이 아닌 국익을 위해 동북공정에 대항할 만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방문 4일째인 9월2일 또 다시 새벽 5시30분 기상. 피곤한 몸을 이끌고 중국 집안을 곧장 향했다. 그곳엔 국내성, 장군총, 광개토태왕릉비등 많은 고구려 유적이 있는 곳이다. 집안에 들어서자 북한의 산이 보였다. 많은 벌목 때문에 초록 빛깔만 띄고 있는 산들을 보며 어서 통일이 돼서 저 너머에 있을 곳들을 내 발로 밟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국내성의 황궁이 있었던 환도산성을 보았다. 가히 천연의 요새라 할만 했다. 3면이 험준한 산이고 남쪽만 견고한 성을 쌓아 수비했다고 한다. 고구려 성 건축양식의 특징들을 들으며 국사를 배우면서도 그러한 특징들을 몰랐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제는 터만 남아서 아쉽게 만든 환도산성을 뒤로 하고 장군총에 다다랐다.


계단식으로 지어진 건물의 각 면에 약 10여톤의 3개의 지지돌이 있었다. 고구려의 위대한 건축기술을 보며 다시 한번 경탄과 긍지가 솟아났다.

웅장한 역사에서 작아지는 우리
이 장군총 안에는 장수왕과 그의 부인의 무덤이 안장돼 있었다. 이 무덤의 주인이 고구려의 찬란한 역사를 이끌어냈던 장수왕이라는 생각이 들자 존경심이 들었다.

장군총 후에 광개토태왕릉비를 보았다. 교과서에서 보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매우 웅장한 이 비 앞에서 나는 작아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곤 광개토태왕의 무덤을 보았다.

장군총과는 달리 관리가 잘 되지 않아서인지 건물안에 채워져 있어야 할 자갈들이 무덤 밖을 뒤덮었다. 교과서에도 보지 못했던 그곳을 방문해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 다음에는 어느 귀족의 무덤을 보았다. 지하로 들어가니 서늘한 기운이 우리를 감쌌다. 무덤 안에 들어가서 그려져 있는 고구려 벽화의 모습을 보았다.

그 무덤 안에 원래 있어야 할 보석이 일본의 도굴에 의해서 없어졌다는 말을 듣고는 기가 막혔다. 그것을 가져간 일본도 나쁘지만 그렇게 우리의 유적을 방치했다는 사실에 옛 정부에도 불만이 생겼다.

유적을 모두 답사하고 돌아오는 길에 한가지 생각이 나를 강하게 사로잡았다. '고구려와 우리의 과거가 왜곡되고 있는 역사, 이제는 바로 잡혀져야 한다!'

고구려의 기상·정신은 우리 것
3일, 이 여정의 마지막 날이 왔다. 여러가지를 느끼게 해주었던 이번 여행. 짧으면서도 길었던 이 여행을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겨두며 우리는 중국을 떠났다.

한국에 도착하고 집에 돌아오면서 우리는 한가지 공통적인 생각을 했으리라. '고구려의 영토가 어디에 속해 있더라도 그 기상과 고귀한 정신은 영원히 우리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그 모든 왜곡된 것들을 바르게 되돌려 놓으리라!'는 것을.
하상일<해룡고 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