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어머니처럼 인자하고 자상한 미소가 얼굴 가득인 김경자(69)씨. 만나는 내내 한국 여인네의 다소곳함이 떠나지 않는 그는 대마면 성산1리 대성마을에 살고 있다.
김 씨는 그가 살고 있는 대성마을과 괴치마을 30여호 50여명의 주민이 가족 같은 정을 나누며 오순도순 살고 있는 성산1리 이장을 4년째 맡고 있다.
“부족함이 많은 저에게 마을대표를 맡겨주신 주민들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적극적인 협조가 마을을 순탄하게 이끌게 하고 있습니다.”
마을의 화기애애하고 단합된 분위기를 전하는 김 씨는 고창 대산이 고향이며 중매로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슬하에 2남2녀를 둔 그는 세무공무원을 지냈던 남편과 자녀들의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서울에서 25년간 살았다. 자녀들이 모두 성장하고 남편이 퇴임하자 다시 남편의 태를 묻은 고향으로 내려온 김 씨는 14년째 머무르고 있다.
남편과 2,000여평의 논농사를 지으며 주민들과 더불어 평화로운 노후를 보내고 있는 김 씨는 바로 코앞에 칠순을 바라보면서도 젊은 이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건강한 노익장을 발휘해 주변이 아름답기만 하다.
“우리마을 이장은 그 나이에 고등학교까지 마친 사람입니다. 최근에는 정부에서도 여성이장의 활동을 권장하고 있으며 살아온 세월의 깊이를 더해 차분히 마을일을 잘하고 있습니다”라며 김 씨를 설명하는 마을의 한 주민.
그는 “게다가 공직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남편까지 이장을 도와 한몫 담당하고 있어 활동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고 칭찬을 덧붙였다.
옛부터 양반마을이라고 불려졌고 마을 출신들이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어 남다른 자부심이 높은 성산1리 주민들은 부드럽고 섬세한 김 씨의 지휘를 따르며 마을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50여년전만해도 어려웠던 시절이라 대부분 어르신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특히 여성들은 더욱이 그랬다. 하지만 3남2녀중 큰딸로 태어난 김 씨는 초등학교 졸업후 광주로가 고등학교를 마친 똑똑한 할머니인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결혼해 현모양처로 평생을 살아온 그는 뒤늦은 사회활동으로 노년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무공해로 농사지어 자녀들에게 보내주는 것이 큰 낙입니다. 이장직을 무리없이 잘 마치고 여력이 되면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노후를 보내며 살고 싶습니다”라며 소박한 소망을 전달하는 김 씨는 행정과 주민의 가교자로서 차분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박은정 기자 ej0950@yg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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