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통일염원 글쓰기대회 수상작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영광군협의회(회장 김윤일)가 지난 5월20~30일까지 관내 초·중·고에 재학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평화통일염원 글쓰기대회 작품을 공모해 수상작을 발표했다. 이번 대회는 통일후계세대인 청소년들에게 분단의 현실을 일깨우고 남과 북이 화해·협력과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마음을 함양시켜 통일 꿈나무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개최됐다. 통일에 대한 염원과 굳은 의지를 다지는 내용, 남북화해 협력과 포용, 희망, 나눔이 담긴 내용, 분단의 고통을 겪는 새터민의 삶의 통해 분단의 아픔을 느끼고 통일의 필요성을 담은 내용 등으로 출품된 작품중에 대상과 최고상을 수상한 학생들의 작품과 수상자 명단을 게재한다. /편집자주■ 평화통일염원 글쓰기대회 수상자
▶ 대상 영광중앙초 김준한(6) ▶ 최고상 영광고 김유림(2), 영광여자중 김지원(1), 영광초 김차근(6) ▶ 우수상 해룡고 임유정(3), 영광고 이보훈(1), 영광여자중 오승진(3), 염산중 박민희(3), 영광중앙초 성채연(2), 법성포초 강승주(5) ▶ 장려상 영광고 채수구(3), 해룡고 백종찬(3), 염산중 신준영(1), 염산중 김연주(1), 불갑초 유혜지(6), 백수초 황대현(6), 법성포초 임경민(5), 법성포초 편하형(6), 영광중앙초 김우주(5), 영광초 정아영(5), 영광초 전경서(6).
<< 대 상 >> - 김 준 한 영광중앙초(6)
제목 - 엄마가 즐겨 부르는 노래 속에는?
평양엘 가려면 서울에서 반나절 거리인데 / 지척에 이 강산은 왜 이다지도 멀기만 한지
중국도 러시아도 모두 열려서 마음대로 오고가는데 / 휴전선 그어놓고 티격 태격에 벌써 오십년 / 차가 없어 못가나 길이 없어 못가나 / 핵우산을 거두고 철조망을 치워버리고 / 백두산에서 한라산에서 덩실 춤을 췄으면 좋겠네
서울엘 오려면 평양에서 반나절 거리인데 / 지척에 이 산하는 왜 이다지도 멀기만 한지
중국도 러시아도 모두 열려서 마음대로 오고가는데 / 휴전선 그어놓고 아웅당웅에 벌써 오십년 / 배가 없어 못오나 산이 막혀 못오나 / 지뢰밭을 거두고 철조망을 치워버리고 / 금강산에서 설악산에서 덩실 춤을 췄으면 좋겠네
위의 노래가사는 우리 어머니께서 자주 부르시는 노래 중에서 ‘서울평양반나절’이라는 노래가사이다.
그저 어머니께서 좋아하는 노래거니하고 지나쳤던 노래였는데 왠지 오늘은 그 가사가 내 귓가에 맴도는지 모르겠다.
노래가사처럼 서울과 평양은 반나절 거리인데 우린 그 길을 돌고 돌아 많은 시간을 보내야 가지 않는가. 백두산을 가더라도 중국을 거쳐서 가고 평양을 갈때도 마찬가지. 참 어처구니없는 실정이 아닌가.
백두산을 갈때도 중국에서 간다면 백두산이 아니고 엄격히 말하면 장백산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장백산을 갔다 오고도 백두산을 갔다 왔다는 일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땅에서 우리끼리 살면서도 남과 북 사이에 철조망을 쳐놓고 오고가지 못한지가 어언 50년을 훨씬 넘었지 않은가. 중국도 훨훨 유럽도 훨훨 다니면서 우리나라를 돌고 돌아야 간다니 어찌 이런 운명이 있단 말인가.
어머니는 그런 슬픔을 노래한 노래 ‘서울평양반나절’을 자주 부르신다. 어머니도 그런 실제 경험은 없으시다.하지만 어려서부터 그런 이야기들을 너무도 많이 배웠고 들었기에 가슴에서 떠나지 않으신 모양이었다. 이산가족이 아닌 나도 들어보면 슬픈 노래 가사인데 이산가족들은 얼마나 더 슬프고 애가 탈까! 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통일을 못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동독과 서독을 보라. 평화적으로 통일을 하여 지금은 매우 잘 사는 나라가 되었지 않은가.
우리도 그런 나라처럼 평화롭게 살기 위해선 하루 빨리 통일을 이루어야한다.
우리가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 본다면 첫째, 통일을 하면 북한의 무수한 자원과 인력을 우리나라의 기술력과 합한다면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강대국이 될 것이다.
둘째, 천여명이나 되는 이산가족의 상봉으로 더 이상 슬픔을 안고 사는 사람이 없을 것이며 여기서 50여년이나 떨어져서 지낸 세월로 문화와 이념의 차이는 있겠지만 통일을 해서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 돕고 살면 될 것이다.
셋째, 더 이상 전쟁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더 잘살 수 있는 나라가 될 것이며 우리국민 모두가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이 세가지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좋은 점이 많겠지만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고 진정으로 통일을 원한다면 서로의 마음을 존중하고 믿음과 평화로서만이 진정한 평화통일이 이룩될 것이다.
오늘 저녁에도 어머니는 부엌쪽에서 ‘서울평양반나절’을 부르시고 계신데 TV속에서는 북한어선과 우리 경비정이 대치하는 모습이 비춰지고 있다.
<< 고등부 최고상 >> - 김 유 림 영광고(2)
제목 - 두손 꼭 잡고
북한에 대해 이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북한은 남한에 비해 가난하니까 통일하면 우리가 손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통일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당위성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2년전 나의 잘못된 생각이 깨지는 일이 있었다. 광주에 다문화가정의 부적응 학생들을 모집하여 조그만 대안학교를 열었는데 교사이신 이모가 그 대안학교 입학식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일손을 도우러 가자는 것이다.
“유림아, 이모랑 봉사활동 같이 가지 않을래?” “네? 저 시간 없는데…” “그래도 갔다 오면 보람 있을 걸?”
결국 얼떨결에 가겠다고는 했지만 고정관념으로 무장된 나에게 이는 불쌍한 이들을 위한 봉사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했을 때 일본인 엄마와 한국인 아빠, 러시아 엄마와 한국인 아빠 등 국제결혼으로 인한 혼혈의 한국 아이들이 많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북한 말투의 나와 비슷한 또래의 유경이었다.
이곳에 와서 북한 사람을 보다니 신기한 마음에 유경이 쪽으로 마음이 쏠렸다. 유경이처럼 탈북한 사람들을 ‘새터민’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나와 다를 게 전혀 없었다.
약간의 말투만 다를 뿐 유경이도 나와 같은 사춘기 소녀였다. 유경이는 북한의 가장 북단 ‘온강’이 집이라고 했다. 나중에 온강이라는 지역을 지도에서 찾아보니 북한에서 체제에 불순한 자를 보낸다는 ‘아오지’라는 지역의 더 위쪽이었다.
초봄이라 제법 쌀쌀한 날씨에도 유경이는 반팔차림이었다. 고향마을이 너무 추운지역이라 남한의 겨울날씨가 춥다는 느낌이 전혀 안 든다고 하였다.
짧은 기간에 우리는 제법 친해진 것 같았다. 이름도 ‘유림이’ ‘유경이’ 비슷하여 자매 같기도 하고 낯선 사람들속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게 하루를 즐겁게 했다.
유경이는 원래 경기도 어디인가 새터민이 많이 사는 지역에 살다가 적응을 못하고 이곳 광주에 내려왔다고 한다. 유경이와 나는 같이 입학식 준비를 위한 환경정리도 하고 예쁘게 벽에 장식도 걸었다. 그러다가 나는 너무 생각없이 질문을 던지고야 말았다.
“어떻게 왔어” 잠시 숨이 멈추는 느낌을 받았다. 오는 데 쉽지만은 않았을 거라는 것을 불을 보듯 뻔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지고야 말았다. 유경이는 숨을 한번 깊에 들이 마시더니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온강에서 중국을 거쳐 캄보디아로 그리고 탈북 부로커에게 삼백만원씩을 주고 남한에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에 나쁜 놈들, 이렇게 힘들게 나오는 데 돈까지 받아?” 나는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리려 일부러 탈북 브로커와 관련해서 열변을 토하며 욕을 해댔다. 그러나 유경이는 잠자코 듣기만 하다 나의 토설이 끝나자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여전히 유경이의 손은 벽장식을 위한 색종이를 오리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오면 얼마나 좋겠니? 사실 오빠가 있는데 우리만 왔어.” “그럼 오빠는 북한 체제에 남은 거야?” “아니, 그런 것은 아니고 어렵게 나왔는데 하필 중국에서 캄보디아로 넘어가려는 찰나에 잡히고 말았어.” “오빠가 다시 북쪽으로 갔는지 중국에 남았는지 알 길이 없어. 백방으로 수소문 하고 있지만 도무지…” 색종이를 오리며 까불던 유경이는 가위질을 멈추고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하였다.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에 물기가 촉촉이 스며 나왔다. 나는 유경이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방송과 신문을 통해서만 들어왔었지만 이렇게 직접 탈북 당사자에게 들었을 때 너무나 가슴이 아픔을 느꼈다.
마치 연약한 새 한마리가 내 품에서 날개를 떨고 흐느끼는 것만 같았다. 나는 오직 그의 들썩이는 등을 토닥여 줄 뿐이었다.
유경이 가족은 남한에 와서도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같이 오지 못한 오빠 때문에도 그랬겠지만 너무나 다른 사회체제의 이질감 때문에 고생도 많이 하는 것 같다. ‘새터’ 정말 유경이에게 이곳이 고향을 온전히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행복한 삶의 보금자리였으면 싶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우린 자주 연락하자고 핸드폰번호를 서로 남기며 헤어졌다. 이 대안학교에서 유경이가 잘 적응하고 정착하길 빌면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
이모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모와 아무 말도 하기 싫었다. 오직 유경이에 대한 생각만이 머릿속에 또아리를 틀었다. 유경이 오빠가 빨리 남한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했다. 아니 생사의 확인만이라도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리고 유경이가 이곳에서 정말 행복하기를 빌었다.
이 모든 현실이 이 자동차 안처럼 답답하게만 생각된다. 분단의 오랜 시간은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 버렸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한반도, 이러한 오명에도 우리는 부끄러움도 없고 통일에 대한 숭고한 실천도 없었다.
고작 전시적인 1회성 행사로 그쳐버린 통일행사가 비일비재했을 뿐이다.
이렇게 죽을 고생을 다해가며 오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부나 사회체제의 개념이 아니라 오고가는 데만이라도 자유가 있다면 이러한 비극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의지와 희생만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독일의 경우를 보라. 동독과 서독인들 사이에 베를린 장벽만큼이나 높은 마음의 장벽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의 장벽을 헐기 위해 그들이 쓴 돈과 노력은 얼마였는가? 좋은 일을 위한 희생은 즐거운 것 아닌가?
통일은 우리가 가져야 할 당연한 것이고 가지고 싶은 선물이어야 한다. 굳이 국력강화, 국토증가, 인구증가, 세계평화유지 등 거창한 통일의 효과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유경이와 같은 우리의 반쪽이 겪을 비참함을 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나와 유경이처럼 남과 북이 같이 일하고 손을 잡았으면 좋겠다.
어딘지도 모르는 유경이의 북쪽 고향땅을 상상하며 조용히 눈을 감아본다. 함박꽃이 몽실몽실 핀다는 유경이의 집 앞마당에 무엇이 그리 좋은지 희희락락 뛰는 나와 유경이가 그려진다. 오직 두손을 꼭 잡은 채로.
<< 중등부 최고상 >> - 김 지 원 영광여자중학교(1)
제목 - 꽃제비를 아시나요?
지난주 토요일 저녁을 먹는데 밥상에 검은콩이 들어있는 밥에 호박 넣은 된장국 그리고 여러 가지 나물무침 등 내가 싫어하는 반찬들만 나왔다. 그래서 투정을 부리고 있었는데 그 날 7시 뉴스에 북한어린이돕기 ‘좋은 벗들’ 단체의 법륜스님이 나오셔서 지금 북한에서는 어린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분은 “현재 북한농촌의 70~80%가 옥수수죽도 아닌 풀죽을 먹고 있는데 옥수수쌀을 만들고 남은 껍질인 묵지가루 죽이나 벼뿌리를 말려서 갈아 만든 죽을 쑤어먹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어 굶어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많아졌다”고 강조하셨다.
농촌지역학교에서는 학생 40%가 결석을 할 만큼 어린이들의 영양실조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증언도 들려주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지금 서민위주의 옥수수와 밀가루 20만톤을 지원하여 북한을 돕자고 하셨다.
화면에서는 희미하지만 방바닥에 누워서 눈만 깜빡이고 있는 어린이들이 보였다. 인터뷰에 나온 탈북자 언니는 북한에서는 너무 배가 고파서 차라리 죽을 각오를 하고 도망쳤다며 북한의 식량 사정이 정말 심각하다고 말했다.
나는 좀 전에 먹기 싫은 콩밥을 주었냐며 엄마한테 짜증을 낸 것을 후회했다. 그들은 내 또래의 친구들처럼 학교나 학원공부는 커녕 배가 고파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고 있는데 마음껏 먹을 수 있는 환경에 태어난 것에 대한 고마움도 모르고 부모님께 투정만 부렸던 것이다.
엄마는 작년에 백두산으로 통일연수를 가셨는데 두만강 나루터에서 말로만 듣던 북한의 꽃제비들을 보았다고 하셨다. 꽃제비란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에서 거지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말하는데 그들의 얼굴은 상처투성이에 까맣게 그을리고 맨발에 손을 내밀고 있었다고 한다. 구걸을 하는 꽃제비들을 보고 엄마는 그들을 도울 방법이 무엇일까 안타까워 하셨다고 한다.
또 엄마가 후원하는 북한기아돕기 단체인 ‘한국 JTS’에선 <2008년 북한에는 보릿고개가 시작 되었어요> 라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었는데 북한은 지금 긴급하게 식량이 들어가지 않으면 작년처럼 수많은 사람이 굶어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중 가장 큰 희생자는 어린이와 노인들이 될 것이라는데 그 단체에서는 겨레의 아픔을 도와 줄 우리나라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함께 그들의 한 그릇의 밥이, 한줌의 옥수수가 되어 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한달 만원이면 옥수수가 20kg이고 북한의 한 가족의 한달 식량이 된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피를 나눈 한겨레이면서도 남과 북으로 갈라져 6·25전쟁이라는 상처를 가지고 서로를 멀리하며 미워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눈을 돌려 우리와 함께 통일의 주인공이 될 북한 친구들의 배고픔을 더 이상 모른 채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나부터 용돈도 절약하고 학용품도 아껴쓰는 습관도 기르고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함부로 낭비하고 있는 돈들을 모아서 배고픔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 친구들을 하루 빨리 구했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통일의 그날도 빨라지지 않을까.
그래서 북한의 친구랑 함께 웃고 손을 잡고 공부하면 우리나라가 더욱 잘 살고 힘이 있는 나라가 되지 않을까.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 초등부 최고상 >> - 김 차 근 영광초(6)
통일을 기다리며
지난주에는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금강산에 다녀 오셨습니다. 가시기 전에 며칠 동안을 마음이 들떠 어머니 아버지께선 어린아이들처럼 잠을 못 이루셨습니다. 그 아름다운 금강산을 실제로 가시게 된다니 마음이 벅찰 수밖에 없습니다.
여태까지 TV에서나 보던 금강산 아니면 사진으로나 보던 금강산을 직접 가셔서 둘러보고 오신다니 어머니와 아버지는 얼마나 좋으실까요? 출발하기 전날에는 이웃집 할아버지가 오셔서 자기 고향땅까지 가거든 흙이라도 한줌 가져오면 좋겠다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 할아버지께서는 6·25전쟁때 남한으로 내려오셔서 지금까지 고향을 가지도 못하시고 날마다 고향이 그리울 때는 북쪽만 바라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하시는 동안에도 할아버지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는 5일 동안의 아름다운 금강산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셨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께서 돌아오셨다니 제일 먼저 찾아오신 이웃집 할아버지께서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엉엉 소리 내어 우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눈물도 멈추고 정신도 차리시더니 아버지의 몸에 코를 대시고 고향냄새를 맡는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몸에서 진짜 할아버지의 고향냄새가 나는 걸까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고향냄새가 많이 난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고향이 그리우셨으면 이런 모습을 하실까요? 어떤 누가 이렇게 할아버지의 고향을 막았을까요? 그것은 다른 나라 사람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 같은 민족끼리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5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할아버지는 그리운 고향을 가실 수 없으니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드디어 아버지께서는 가방을 열더니 할아버지께서 부탁하신 흙이 담긴 봉투를 할아버지께 내밀었습니다. 내밀자마자 할아버지께서는 봉투를 안고 아까처럼 또 엉엉 우셨습니다. 그러시다가 이번에는 봉투를 열고 손가락으로 흙을 집으시면서 입안으로 넣으셨습니다.
할아버지가 흙을 집어넣는 것은 흙이 아닙니다.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십니다. 누가 흙을 먹을 것인가요? 그토록 할아버지의 마음속에는 가고 싶은 고향이 너무나 그리우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할아버지 같은 분들이 고향을 갈 수 있게 하는 일에 힘을 모아야 됩니다.
이렇게 우리 모두가 힘을 모으는 날이 오면 할아버지의 소원도 풀리고 통일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통일이 되면 금강산 신의주 두만강도 가고 멀리는 러시아까지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통일이란 무엇이고 왜 이루어야 할까요? 통일은 우리 모두의 꿈과 희망입니다. 지금은 갈 수 없는 북한은 우리 조상님들의 손때가 묻은 곳입니다.
그러나 이곳을 못가니 땅에 묻히신 조상님도 안타까워하실 일입니다. 통일이 언제 올지는 몰라도 우리 북, 남한 한겨레가 서로 이해할 때 통일이 오고 천만 이산가족이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꿈이자 희망이고 통일의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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