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녀<원진미용실>
그리도 기승을 부리며 밤잠을 설치게 하던 무더위가 주섬주섬 짐을 싸기 시작 하는 여름의 끝자락. 유난히 후덥지근한 날들이 길어서였을까, 가을이 오는 길목을 사람들은 여느 해보다 훨씬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가을이 남성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서서히 파고드는 바람은 ‘여심’ 또한 싱숭생숭 흔들어 놓으며 변화의 충동을 자극한다. 머리스타일, 의상 등을 통해….
“언니 나 머리 염색 좀 하려고.” 오랫동안 길들여진 듯한 익숙한 인사를 건네며 들어서는 손님을 반갑기보다는 편하게 맞이하는 한옥녀(57)씨. 20년째 미용실을 운영하는 그는 영광읍 백학리 터줏대감으로 다정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미혼시절부터 머리 만지는 것을 좋아했던 저는 막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뒤늦게 학원을 다니며 미용을 배우기 시작했죠. 그때만 해도 손님도 많고 참 재미있게 일했습니다.” 미용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밝히며 지난 추억에 잠기는 한 씨.
그는 마흔을 바라보는 37세의 나이에 광주로 학원을 다니며 자격을 취득해 미용인이 됐다. 지금처럼 미용실이 많지 않던 시절 미용실을 개업해 호황을 누리며 전성기를 보낸 그는 직장생활을 하는 남편을 내조하고 2남2녀의 자녀를 돌보며 순탄하게 사업을 이어왔다.
“결혼을 앞둔 신부에게 화장을 시키고 머리를 손질해 예식장으로 향하게 할 때, 얼굴과 어울리는 머리스타일을 만들어 아름다운 인상을 만들 때, ‘훨씬 예뻐졌다’며 함박웃음으로 미용실을 나서는 손님을 바라보면서 즐거움을 찾지요”라며 일상의 보람을 밝히는 한 씨는 처음 시작한 그 자리에서 주민을 만나며 깊은 정을 쌓아가고 있다.
“예전 단골들이 이젠 많이 저세상 사람이 됐습니다”라는 한 씨의 말처럼 곱디고운 새댁은 40~50대 중년부인이 됐고 중년부인들은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돼 그를 찾고 있다.
파마를 한듯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고 낮잠을 쫓고 있던 한 어머니는 “젊은 시절부터 이곳만 다녀서인지 여기가 편하고 좋아. 주인댁도 참하고 머리도 마음에 들게 해주니 늘 올수밖에…”라며 만족을 표시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말처럼 변화를 꿈꾸는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손님층이 다양한 한 씨가 운영하는 미용실은 아름다움을 가꾸는 사랑방으로 세월을 채워가고 있다.
한 씨는 “몸도 예전 같지 않아 요즘은 쉬엄쉬엄 일하고 있습니다”라며 “최근 미용실이 많다보니 서로 간에 경쟁도 심하고 경기도 예전 같지 않아 어려움이 많지만 아름다움을 창조한다는 프로정신이 필요하다”고 후배미용인들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박은정 기자 ej0950@yg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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