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부정선거와 좌절된 민주주의
3.15부정선거와 좌절된 민주주의
  • 영광21
  • 승인 2002.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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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홍의 선거50년사
▲ 3 ·15부정선거의 주모자에 대한 재판 모습
당시의 집권당인 자유당은 민주당 대통령후보인 조병옥이 신병치료차 미국으로 건너간 틈을 타 1960년 5월중에 실시하기로 되어있는 정.부통령선거를 2개월이나 앞당겨 3월15일 실시한다고 공고하였다.
조병옥 후보는 미국 육군병원에서 2월6일 수술을 받았고 수술후 경과도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선거가 한달 남은 2월15일 심장마비를 일으켜 병원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이에 대통령은 이승만 후보의 당선이 확실하므로 자유당은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온 힘을 다했고, 자유당의 부정선거 음모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선거가 부정과 폭력으로 자행되는 것을 지켜본 많은 국민들이 분노를 떨었고, 마산의 시민.학생들에 의한 부정선거 규탄 시위는 4월 혁명의 불길을 당겼다.

4.19민주혁명으로 제4대 대통령 선거(이승만 당선) 자체가 무효가 됐다. 그리고 그해 8.12국회 양원(민의원 220명, 참의원 43명) 간접선거(의원내각제)에 의해 윤보선을 제4대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지방자치법의 개정으로 주민이 직접 선출하는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실시돼 서울특별시.도의원, 시.읍.면의원, 시.읍.면장, 서울특별시장.도지사 선거가 실시되는 등 주민자치가 활짝 열리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정부의 독립성 결여로 인한 극도의 혼란으로 1961년 5월16일 일본군 헌병출신인 박정희 소장이 주도한 군사쿠테타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