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우리 한(韓)옷 만든 숨은 실력가
50년 우리 한(韓)옷 만든 숨은 실력가
  • 영광21
  • 승인 2004.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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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뜸 한뜸에 세월의 역사와 모양이 곱게 남겨진다
문화예술인 34 - 바느질 김현호

우리 고유의 깊은 멋과 고급스러운 기품이 담겨 있는 아름다운 우리 한 옷을 만들며 50여년 동안 바느질을 하고 있는 이가 있다.

영광 우산공원을 오르는 길목에 자리한 자택에서 만난 김현호(79)씨는 오랜 세월의 그림자를 느끼게 한다. 김현호씨는 영광 군남에서 출생했고 옛 어른들이 모두 그랬듯이 김 씨도 어려서부터 바느질을 접했고 직접 옷을 만들어 입으며 지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특별히 배운 것도 아니고 혼자서 바느질을 익히며 이것저것 만들어 왔다. 그러나 그는 타고난 소질이 있었던 것이다. 무엇이든 보기만 하면 치수도 정확히 맞게 척척 바느질을 해 완성품을 만들어 냈다.

이렇게 바느질을 해오던 그는 결혼 후 남편을 따라 30대 초반 광주로 가 생활하며 본격적으로 한복과 이불, 수의 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솜씨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그를 찾아오는 손님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고 한다.

김 씨는 정식으로 가게를 가지고 바느질을 한 것이 아니다. 소문으로 그의 솜씨가 알려져 가정에서 4남2녀의 자녀를 돌보고 남편을 내조하며 조용히 감춰진 채 바느질을 해왔다. 그러던 중 백수가 고향인 남편을 따라 20여년 전 다시 영광으로 돌아와 바느질을 이어 왔다.

결혼을 앞둔 신혼부부, 회갑이나 칠순을 맞는 어른, 돌을 맞는 아이 등 특별한 날을 맞는 이들은 김 씨의 손을 거친 한복을 입고 있어 자리가 더욱 빛나던 것이다. 어떤 가정은 대를 이어 김 씨의 단골이 되어 지금까지도 다른 한복 집을 가지 않고 고집스레 찾아온다고 한다.

그의 오랜 단골인 한 손님은 "할머니의 바느질 솜씨는 매우 꼼꼼하고 세심하다"며 "제대로 교육을 받고 정식으로 한복 집을 운영했다면 그의 명성이 더욱 알려졌을 것이다"고 그의 솜씨를 인정했다.

한편 김 씨는 "한복은 한국 고유의 전통 옷으로 우아한 자태와 부드러운 곡선 그리고 전통적인 색깔은 세계의 어떤 전통의상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은 우리 선조의 고유의상이다"며 "한복이 이 같은 가치와 멋에도 불구하고 우리 생활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고 무척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젠 나이도 많이 들고 몸도 많이 쇠약해져 전처럼 바느질을 많이 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그를 찾는 이들이 있고 그들을 위해 열심히 바느질을 하고 있다.

올해는 윤달이 들어 있어 수의를 많이 주문한다고 한다. 김 씨는 수의를 그냥 만드는 것이 아니고 삼베 원단을 빨아 다시 다려서 깨끗하게 만들고 있다. 바느질 한뜸 한뜸에 정성을 다해서.

원불교 교도이기도 한 그는 교무들의 법복도 많이 만들어 주었다. 이런 김 씨는 바느질을 하면서도 틈틈이 교전을 쓰며 마음 수양을 하고 있다. 그의 공부가 깊어 지난해는 법사로 승진하기도 했다.

바느질이 무슨 예술(?)이냐고 하겠지만 특별히 지도를 받은 것도 아니고 눈으로 보기만 하면 꼭 한복이 아니어도 무엇이든 척척 만드는 그의 바느질 솜씨는 예술의 경지에 오른 실력이 틀림없었다.

어린 손녀딸이 그가 만들어준 한복을 입고 친구에게 뽐내며 자랑한다고 한다. "너는 이렇게 예쁜 한복을 만들어주는 할머니가 없지?"라고.
김현호씨는 이제 황혼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그가 바느질한 옷들은 곱게 각자의 주인 곁에서 그를 기억하며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