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를 떠나 섬 속에 솟은 심산 사랑도
육지를 떠나 섬 속에 솟은 심산 사랑도
  • 영광21
  • 승인 2004.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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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 46 - 삼천포 사랑도 지리산(398m)
사랑면에는 여러 섬이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윗섬을 동서로 가로지른 산줄기 서쪽에 우뚝 솟아 있는 지리산은 ‘돈지’마을과 ‘내지’마을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두 마을의 공통지명인 지리(地里)를 산 이름으로 삼았고 이후 ‘날씨가 좋은 날이면 북서방향으로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이 한눈에 들어온다’하여 마을 사람들은 지리망산(智異望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요즘은 그 이름을 줄여서 ‘지리산’이라 부르고 있다. 토박이 지명은 산 남쪽 바위벼랑이 새드레(사다리)를 세운 듯 하다하여 새드레 혹은 새들산으로도 전한다.

섬 서단에 위치한 돈지마을은 500여년전 섬동쪽 끝 마을인 진촌부락에 진(鎭)을 설치할 때 주민들이 ‘고된 지게’라는 뜻에서 덴지게라 일컬어오다가 마을앞 개(포구)가 못처럼 생겨서 혹은 마을지형이 연못을 닮았다 하여 돈지라 불리게 되었다고 마을인은 전한다.


만호진을 설치했던 군사요충지 사랑도
사랑면은 섬사이의 해협인 동강을 사이에 두고 윗섬(상도)과 아랫섬(하도)으로 나뉜 사랑도와 ‘수우도’등의 3개 유인도와 ‘대섬’ 농가도 등 6개 무인도로 1개면을 이루고 있다. 사랑도의 이름은 윗섬과 아랫섬 사이의 해협이 구불구불한데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사랑도의 옛이름은 박도(樸島)로 고려때 박도구랑소를 세우고 봄 가을 관할 고을수령이 남해의 호국신에게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망제를 지냈고 이후 조선초 인접한 ‘구랑랑만호진’의 수군과 병선의 초계정 박처가 되었다가 섬에 영전(營田)을 일구어 병사들이 내왕하며 농사를 지은 것으로 사료에 기록돼 있다.

그러다 진영을 이 섬으로 옮겨 ‘사랑만호진’을 축성해 비로소 진영의 위용을 갖추었다 한다. 이후 임진왜란때 호남과 영남을 잇는 수군의 중요 거점으로서 통영군창둔전과 통영둔우의 방목처와 더불어 거북선 1척, 병선1척, 사추선 2척에 216명 규모의 병력이 상주하며 해역을 지킨 예로부터 군사적으로 중요한 섬이 되었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사랑도 산행은 얕다고 해서 우습게 여기다가는 큰일난다. 마음 단단히 먹고 산행에 동참해야 한다. 산행은 일반적으로 돈지에서 동쪽 방향으로 진행, 지리산과 불모산에 이어 험난한 암릉구간인 옥녀봉 능선을 거쳐 금평리 면소재지인 진촌마을로 하산한 다음 금평항에서 배를 타고 육지로 나가는 코스가 있다.

또 금평면사무소에서 옥녀봉 정상, 절벽구간을 거쳐 철계단이나 나무사다리를 타고 오른 다음 금평리 돈지 방향으로 산행하기를 전하고 있지만 금평항에서 운항하는 배편이 더 많기 때문에 배를 놓칠 염려가 적다. 그러기에 금평항을 산행종착점으로 삼는 것이 좋다.

산행코스
돈지 선착장을 출발해 1시간 정도 오르면 지리산 정상에 닿는다. 여기서 촛대봉까지는 1시간 정도를 오르면 삼거리를 만난다. 촛대봉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을 따르면 성자암을 거쳐 옥동(1.3km)으로 내려서고 왼쪽 길을 따르면 불모산 정상으로 향한다.

329m봉을 넘어 안부로 내려서면 또 다시 갈림길을 만난다(지리산 0.6km 내지 3km, 성자암 0.3km 옥동1.3km). 여기에서 오른쪽 길로 10분쯤 가면 맑은 석간수가 나오는 성자암으로 내려선다. 산행중 식수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갈림길 지점을 지나 완경사 능선을 따르다보면 가마봉(1.3km) 옥녀봉(1.7km)를 지나면서 바위능선으로 올라선다. 지리산 서릉과 달리 폭이 좁아 고도감이 더욱 느껴지는 암릉이다.

이어서 달바위(400m)란 표지석이 서있는 이 산 정상이 사랑도 최고봉으로 나무가 없어 고려때부터 불모(不毛)라는 한자명을 지니게 되었다 한다. 불모산 정상에 오르면 설악산 공룡릉을 옮겨 놓은 듯한 가마봉(303m)과 향봉 옥녀봉 암릉이 한눈에 들어온다.

체력이 약하거나 담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구간에서 하산하여야 한다. 지리산 산행은 완주시 5시간30분 정도 소요. 위험지대가 많으니 유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