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지역 선거약사
1948년 5월10일 시행된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전라남도의 29명을 포함 200명의 국회의원이 선출됐다. 영광군에서는 한국민주당 소속의 조영규씨가 무투표 당선됐다. 그는 경성제일고보(현 경기도)를 거쳐 중국 북경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재학 중에는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서 일경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미군정때 의사시험에 합격, 출마당시 영광 보건진료소장직에 있었다.
제2대 국회의원선거
1950년 5월30일 시행된 제2대 선거는 210인의 의원을 선출했다. 전라남도는 전대에 비해 한 개 선거구가 늘어났다. 영광군에서는 전남에서 가장 경쟁률이 높은 16대1의 경합을 벌였다. 이 때부터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조·정의 대결시대>가 시작되었는데 한청소속의 정헌조씨가 당선됐고 제헌의원인 조영규씨는 3위에 그쳤다.
이 선거에서 조영규의 표를 분산시키기 위해 각 면별로 1명 또는 그 이상의 후보를 지원했다 하며, 심지어는 조영규의 비서관이었던 김창집씨를 회유해 입후보시켰는데 그가 2위를 차지하였다.
제3대 국회의원선거
1954년 5월20일 시행한 제3대 선거는 203개의 선거구로 구성됐다. 전라남도는 제2대와 같이 30개 선거구로 구성됐으며, 조봉암 선생의 비서를 지낸 서진휴씨 등 4명이 입후보했다. 자유당정권이 경찰을 등에 업고 극성을 부린 이 선거에서 영광군에서는 초대 민의원의원을 지낸 조영규씨가 당선됐다.
제4대 국회의원선거
1958년 5월2일 실시한 제4대 선거는 전체 233개의 선거구 중 전라남도는 32개의 선거구를 갖게 됐다. 영광군에서는 민주당 공천을 받은 조용규씨가 1, 3대에 이어 당선됨으로써 3선의원이 됐다.
제5대 국회의원선거
1960년 7월29일 실시한 제5대 선거에서 233개의 선거구 중 전라남도는 32개의 선거구로 구성됐으며 영광군에서는 조영규씨가 제헌국회의원 및 3, 4대에 이어 당선됨으로써 4선의원이 됐다.
제6대 국회의원선거
1963년 11월26일 실시한 제6대 선거에서는 선거구의 개편으로 전라남도 전체 선거구는 19개가 됐다. 영광군과 함평군은 통합돼 단일 선거구가 됐다. 이 선거에서는 조영규씨가 서울 성북에서 출마하고 대신 그의 아들인 조기상씨가 입후보했다.
부친의 친구이자 같은 민주당 구파 소속이었던 함평의 김의택씨를 돕기 위해 피선거권을 갓넘긴 26세의 나이에 처음 출마한 그는 당초 정헌조씨의 영광표를 잠식, 양분할 계산이었으나 결과는 제2대 민의원을 지낸 민주공화당의 정헌조씨가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정헌조씨가 당선은 그동안 영광, 함평에서 3대에서 5대까지 야당의 조영규, 김의택씨가 연속 당선되는 바람에 타 지역에 비해 지역개발이 늦어진데 따른 정헌조씨의 지역개발 공약의 성과로 풀이된다.
제7대 국회의원선거
제7대 선거는 1967년 6월8일 시행됐다. 영광, 함평의 공동선거구가 된 뒤 두 번째로 치루어진 이 선거에서 영광출신 3명과 함평출신 3명이 각축을 벌렸으나 함평출신 윤인식씨가 당선됐다. 조영규씨는 이 선거를 마지막으로 입후보하였고 그후부터는 조기상씨를 지원했다.
제8대 국회의원선거
1971년 5월25일 시행한 제8대 선거에서는 선거구가 재조정돼 영광과 함평이 다시 분리됐다. 영광군에서는 박경원 전내무부장관의 지원을 받은 박종진씨와 정헌조씨의 비서를 지낸 정병원씨의 대결 결과 민주공화당의 박종진씨가 당선됐다.
제9대 국회의원선거
1972년 12월30일 비상국무회의에서 제정 공포된 국회의원선거법에 의해 1973년 2월27일 제9대 선거가 실시됐다. 전라남도 전체10개 선거구 중 영광, 함평, 장성이 제10선거구를 구성해 2명의 의원을 선출했다.
제10선거구에서는 함평출신 윤인식, 이진연, 영광출신 정헌조, 장성의 김상복씨 등 4명이 겨뤄 군대항을 방불케 했으나 군세가 가장 열세이면서 한 군에서 2명이 입후보한 함평에서 공화당 소속 윤인식씨가 7, 8대에 이어 당선됐으며, 신민당 소속 이진연씨가 초선의원이 됐다. 영광은 3군중 인구가 가장 많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원 지역이 됐다.
제10대 국회의원선거
제10대 선거는 1978년 12월12일 시행됐다.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처럼 영광, 함평, 장성은 제10선거구를 구성했다. 전라남도지사 및 한국4H연맹부총재와 동립산업주식회사 사장을 지낸 장성의 김재식씨와 제9대 국회의원 및 신민당 원내부총무를 지낸 함평출신 이진연씨가 각각 당선됐다.
이로써 조기상, 김연관씨의 영광은 다시 무의원 지역이 됐다.
제11대 국회의원선거
제11대 선거는 1981년 3월25일 시행됐다. 제5공에 들어선 11대의 영광, 함평, 장성의 제11선거구에서는 영광출신 3명(조기상, 이원형, 김연관)과 함평출신 3명(이진연, 윤인식, 안종필) 그리고 장성의 김상복씨 등 7명이 입후보했다. 선거결과는 영광출신의 조기상, 이원형씨가 각각 당선됐다. 이로써 9, 10대의 무의원의 설움을 설욕했다.
제12대 국회의원선거
1985년 2월12일 시행된 제12대 선거에서는 전라남도 11개 선거구중 영광, 함평, 장성의 제11선거구에서는 변호사이며 국회의정 동우회 원내총무를 지낸 이원형, 국회 내무분과위원회 간사출신의 조기상, 신민당 지구당위원장 출신의 김상복, 제9, 10대 국회의원이며 민주한국당 전남도지부장을 지낸 이진연, 청와대에 근무했으며 통정주택건설(주) 대표이사인 장성출신의 백상규씨 등 5명이 입후보했다.
투표결과 영광의 조기상씨와 함평의 이진연씨가 당선돼 재선과 3선을 각각 기록했다.
제13대 국회의원선거
제13대 선거는 1988년 4월26일 시행됐다. 전라남도 18개 선거구중 영광, 함평의 제17선거구에서는 민정당 전남지부장 및 정무장관을 지낸 조기상, 민주쟁취국민운동 전국본부 상임공동대표 및 한국 가톨릭농민회 전국본부회장을 지낸 서경원, 그리고 영광군 평통회장을 지낸 최주경씨 3명이 입후보했다. 선거결과 평민당 공천을 받은 함평출신 서경원씨가 당선됐다.
제13대 국회의원 보궐선거
평민당 출신 서경원 의원은 재임중 정부와 사전협의 없이 밀입북한 결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89년 6월 구속됐다. 이에 실시된 1990년 11월9일 보궐선거에서 평민당이 지역감정 해소 차원에서 영남출신의 이수인 후보를 세워 13대에 이어 재도전한 조기상씨를 눌렀다.
제14대 국회의원선거
제14대 선거는 1992년 3월24일 실시됐다. 보선에 당선된 민주당 이수인씨가 선거구를 서울로 옮겨 낙월면 출신의 김인곤, 함평출신의 함평출신의 안평수 등이 새롭게 등장했으며, 선거결과는 전국구 의원을 지낸 김인곤씨가 당선됐다.
제15대 국회의원선거
제15대 선거는 1996년 4월11일 실시됐다. 5명이 출마한 가운데 14대때 당선됐던 새정치국민회의의 김인곤 의원이 압도적으로 당선됐다.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제16대 선거는 2000년 4월13일 실시됐다. 5명이 출마한 가운데 새천년민주당의 이낙연 후보가 압도적으로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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