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1979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12·12로 통칭되는 하극상을 통하여 군부를 장악하였다. 신군부는 박정희부터 이어온 군사독재를 연장하려는 음모로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를 발표하고, 민주인사들을 체포 투옥하기에 이르렀다.상황이 이에 이르자 자연발생적으로 학생 시민 연대가 전국적으로 반발하였고,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여망을 잠재우기 위해 신군부는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과잉진압을 하였다. 신군부는 자신들의 의도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을 불순분자와 폭도로 지칭하면서 시민항쟁을 난동으로 규정하였다.
5월18일부터 시작된 시민항쟁은 시민자치와 민주주의 공동체 구현 등 숱한 뒷이야기를 남기고 5월27일 새벽 2만5,000명에 달하는 군을 투입한 무력진압에 정부공식 발표 사망 191명, 부상자 852명을 내고 막을 내렸다.
하지만 5·18 광주민중항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의 사회운동은 1970년대의 지식인 중심의 운동에서 민중운동으로의 변화를 가져왔고, 국민들의 미국에 대한 인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는 기점이 되었다. 또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고 군부독재가 국민들에 의해 단죄되자‘폭도들에 의한 난동’이란 규정도‘광주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5월18일 광주 5·18 국립묘역에서 거행된‘제24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 기념사를 통해 “5·18은 독재에 대한 시민의 저항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과거 군사독재 정권들이 장기집권을 위해 또는 장기집권의 결과로서 호남을 따돌리고 국민을 지역으로 갈라치고 이간질해 분열시킨 반역적 범죄행위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다”며 저항은 정당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5·18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그 누가 민주주의를 외칠 자격이 있는지를 온 몸으로 보여준 것”이라며 “특히 광주에서 시작된 민주화의 불꽃은 87년 6월항쟁을 거쳐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뤄내고 마침내 시민참여혁명, 참여민주주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5·18은 점차 진정한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가슴 한 구석은 항상 편하지 않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단단한 응어리가 남아 있어서 마음이 아프다. 이렇게 아픈 상처를 더욱 덧나게 하는 장본인은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주범인 전두환이다.
“통장에 29만원밖에 없다”는 뻔뻔한 발표가 귓가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부인이 ‘피나게 번 돈(?)'이라는 숨겨둔 수백억원이 들통나서 국민들의 가슴을 난도질하였다. 정말이지 살맛이 싹 달아나게 하는 사건이었다. 누구도 믿지 않을 말을 그렇게 태연하게 하는 전두환을 보면서 요즘 가장 많이 쓰이는 ‘상생’이란 단어를 없애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죄인이 진심으로 속죄를 할 경우에 용서가 가능한 것이지, 여전히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고 ‘나 잘 했소’하면서 ‘내 배 째라’는 식으로 대드는데 무슨 얼어죽을 용서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또 한번의 5·18을 보내면서 정리되지 않은 과거가 무겁게 가슴을 짓누른다. 도대체 언제까지 전두환이 연출하는 웃지 못할 기막힌 코미디를 보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화합과 상생의 시대를 열자고 앞다투어 외치는 17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은 상생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하여야 할 것이다. 5·18의 숭고한 뜻을 완성하는 명실상부한 길을 찾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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