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야기 52 - 국립공원 속리산(1,057.7m)

속리산은 백두대간을 지탱하는 큰산임에도 등산인들은 대개 보은군쪽 법주사 방향으로 많이 오르고 있다. 그것은 대찰 법주사 쪽 등산로가 워낙 잘나있어 등산인 뿐만 아니라 법주사를 찾는 불교도들마저도 부담없이 속리산 날등을 오르곤 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벼운 마음으로 천왕봉을 비롯 문장대 신선대 등 전망대 같은 곳을 올라 보은 상주 괴산 문경 일원을 바라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일이다. 기암괴봉이 연이어지는 속리산 산줄기를 비롯 북으로 대미산 남으로, 추풍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줄기와 그 양옆에 수협이 솟아있는 산과 능선을 바라보노라면 누구나 감탄사를 터뜨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법주사 기점코스 산행은 속리산의 일부만을 맛보는 것에 불과하다. 경북 상주와 충북 보은 두 시·군에 걸쳐있는 속리산은 품이 넓다. 눌재에서 문장대 ~ 천왕봉을 거쳐 남서쪽 길목재로 이어지는 한남 금북정맥 외에도 문장대에서 묘봉(874m)을 거쳐 활목 고개로 넘는 서북릉 등 속리산은 사발팔방으로 길이 나있다.
문장대 북동릉의 끝머리에 솟은 장바위산(545m)은 마치 상수리를 세워 놓은 듯하다.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군사를 양성하기 위해 신라의 석성을 재구축했다는 견훤산성이 있다. 여기서 ‘후백제 시조’ 견훤과 견훤산성의 역사속으로 들어가보자.
문경가은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이(李)씨 성을 황간 견(甄)씨로 바꾼 '견훤(甄萱)'은 신라의 비장으로 있다가 진성여왕 6년(서기 892년)에 5천여 군사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무진주(광주)로 내려가 자리잡은 다음 경상 전라의 일부를 경합하고 왕에 즉위한 이후 완산(전주)을 도읍지로 정하면서 후백제를 세운 인물이다.
그는 927년 경주 포석정에서 연회를 하던 경애왕을 공격해 자결하게 만들고 자신의 10여명의 아들 가운데 셋째아들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자 했으나 맏아들인 ‘신검’이 반란을 일으켜 자신을 금산사에 가두는 바람에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대세에 밀려 932년‘왕건’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상주시 하북면 장암리 속리산 동쪽 줄기의 장바위산(545m) 정상부에 쌓은 견훤산성(경상북도 지정 기념물 제53호)은 이렇게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한 견훤이 축성했다고 전해지는 석정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신라때 쌓은 석정을 견훤이 동쪽으로 진출할 거점 겸 신라와 고려의 공격을 막는 진지로 사용한데서 그렇게 된 것이다.
둘레 724m에 4개의 망대로 이뤄진 견훤산성은 지형에 따라 2∼12m높이로 돌을 쌓고 성안에는 3곳의 건물터와 1개의 우물 그리고 2개의 저수시설 흔적이 남아있다. 축성한지 1천년이 지났지만 원형의 3분의 2가 남아 있을 정도로 견고하게 쌓은 성이다. 화북면 소재지에서 시어동으로 들어서다 보면 오른쪽 길가에 비석과 견훤산성 0.7km라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등산로는 능선길과 계곡길 두갈래가 있는데 각각 30분 정도 걸린다.
속리산 산행코스는 물론 역사기행 코스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식수는 문장대 부근 샘에서 구해야한다. 다른 곳은 식수가 없다. 혹 신선대 매점에서 생수를 팔기도 하지만 평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 날이 많으니 유의하기 바란다.
산행 길잡이
1. 산수유 능선 ~ 신선대 ~ 문장대 ~ 철계단 ~ 1018m봉 ~ 비로봉(6시간 정도)
2. 법주사 휴게소 ~ 문장대 ~ 문수봉 ~ 신선대 ~ 입석대 ~ 비로봉 ~ 천왕봉 주차장(약 6시간30분 정도)
3. 비로봉 ~ 신선대 ~ 산수유 능선 ~ 시어동 관리사무소(약 2시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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