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들꽃 세상을 위하여
아름다운 들꽃 세상을 위하여
  • 김기홍
  • 승인 2002.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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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찾은 ‘야생초 편지’ 작가 황대권씨
얼마전 인터넷을 항해하고 있는데 어떤 문구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양심수가 보내는 야생초편지’가 바로 그것이다. 어느 양심수가 고백하는 뻔한 이야기려니 생각하며 글을 읽어 내려가는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13년 2개월 동안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한 것부터 시작해 감옥에서 엉뚱하게도 풀을 뜯어먹고, 풀을 기르고, 풀과 대화하는 것. 모든 것이 상상 밖의 내용들이었다. 게다가 영광에서 살았다고까지 하니 ‘도대체 이 책의 저자가 어떤 사람일까’하는 호기심이 자극했다.

곧바로 책을 주문하고 저자가 대표로 있다는 ‘생태공동체 연구모임’(www.commune.or.kr)에 접속해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봤다. 그러던 와중에 지난 14일 영광여성의전화 이태옥 사무국장으로부터 야생초편지의 저자 황대권씨가 영광에 왔는데 만나보지 않겠느냐는 연락이 왔다.

얼마나 기대하던 일인가. 곧바로 달려가 그를 만나 그가 영광에 살던 당시 조성해 놓은 농장에 같이 가봤다. 대마면 태청산 중턱 경치 좋고 전망 좋은곳에 위치한 그의 농장은 3년 동안 주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탓에 칡넝쿨이 농장 전체를 뒤덮고 있어 야산을 방불케 했다. 그가 이곳을 조성할 당시 생활했다는 컨테이너 또한 창살이 뜯겨져 나가고 겉은 녹슬어 있어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그는 본래 영광사람이 아니다. 지난 99년 감옥에서 석방된 이후 선친이 사놓은 땅에 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생태농장을 조성하기 위해 영광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영양분이 부족한 돌산을 정리하고 돌을 하나한 주워 한곳에 모으고 복토를 하는 등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곳에 두충, 오가피, 당귀 등을 심었다. 7개월여를 이곳에서 생활하며 야생초 농장을 조성하던중 영국 임피리얼 대학의 초청을 받아 유학을 가게 되었다.

영광에서 야생초 농장을 가꾸며 생활할 때 노르웨이 국영방송(NIR)에서 생태공동체를 가꾸는 농사꾼이 된 '잡초박사'의 삶을 다큐멘터리를 제작, 노르웨이 전역에 방영되기도 했다. 국내보다 국외에서 더 많이 알려진 그는 지난해 앰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 40주년 기념 달력 1월의 모델로 선정되기도 했다.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뉴욕 소재 사회과학대학원에서 제3세계 정치학을 공부하던 저자는 1985년 학원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국가기관에 의한 조작극인 것으로 밝혀졌으나 그는 서른이던 1985년부터 98년 마흔네살이 될 때까지 청춘을 대구, 안동, 대전 등의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그는 감옥 안에서 야생초 화단을 만들어 100여종에 가까운 풀을 심어 가꾸기 시작했다. 이후 앰네스티의 지원이 들어오고 외국과의 서신왕래가 허용돼 영국 펜클럽 회원 자격으로 연락을 주고받게 됐다. 만성 기관지염에 요통, 치통으로 고생하다 몸을 치유하기 위해 자연요법을 시작했고 운동시간에 나가서 운동장에 난 풀들을 자신의 일부로 여기고 관찰하기 시작했다.

몸을 고치기 위해 풀들을 먹고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생태주의자가 되어 갔다. 그는 교도소에서 풀이라는 풀은 죄다 뜯어먹어 ‘토끼’라 불린 괴상한 양심수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식물종은 약 35만여종인데 인간이 재배해서 먹고 있는 것이 약3천여종이다. 나머지 34만7천여종의 식물을 잡초라고 없애버리는 것은 잘못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그는 ‘잡초’가 아니라‘야초’라는 말을 쓴다.

그는 야생초 재배 경험을 토대로 우리 농업을 살릴 생태공동체 구상에 몰두해 있다. 농산물시장이 전면개방 되면서 기존 농사방식으로는 우리 농촌의 활로는 없고 우리 농촌이 살아남을 유일한 길은 ‘야생초와 더불어 짓는 자연농법’이라는 것이다.

얼마전 귀국한 그는 요즘 여기저기 강연을 다니며 생태공동체의 중요성을 이식시켜가고 있다. 자신이 가꾸던 대마의 농장은 어떻게 할 것인지 아직은 정하지 않았지만 생태공동체 마을을 운영 해보고 싶다고 한다.


화제의 책- 야생초편지

야생초에 대한 설명 수채화만큼 생생
98년 출옥 후 옥중에서 동생과 나눈 편지들을 모아 이번에 그가 펴낸 책 ‘야생초 편지’는 갇힌 공간에서 이처럼 자유를 얻었던 한 구도자의 사색일기다.이책에는 인류 최초로 삭막한 감옥 운동장 한쪽에 ‘야생초 화단’을 일군 황씨의 야생초 생장기록과 감옥살이의 사색이 담겼다.

풀 몇 포기밖에 없는 교도소에서 저자가 해낸 일은 무척 인상적이다. 어린 시절 화가를 꿈 꾸었고,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전공자답게 야생초에 대해서는 그 생김새나 주성분, 약효에 이르기까지 다루지 않는 것이 없다.야생초의 생김새를 꼼꼼하게 그린 수채화가 볼 만하고, 각각의 야생초에 대한 설명이 이 수채화만큼 생생해서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몇 포기 채집하고 풀씨를 뿌려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한다.

몸과 정신이 만신창이가 된 상황에서 그는 만성 기관지염을 고치기 위해 교도소 담장밑 풀을 뜯어먹다가 효과를 보게 되면서 풀에 관심을 갖게 됐다. 오랜 독방생활의 지루함이 그를 엄습할때 찾아오는 파리, 거미, 쥐들과 친구가 됐다. 풀 한포기, 벌레 한 마리와의 대화는 그렇게 이뤄졌다. 그러면서 그의 생각이 차츰 변하기 시작했다.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야생초를 가꾸면서 자기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고 세상과 우주를 보는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린 생명의 일기인가 하면, 자기와의 처절한 싸움에서 생각을 바꿨을 때 인간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자기 성찰의 기록이다.

감옥에서 100여종의 잡초를 직접 키우고 한평의 감방에서 특미 야생초 요리와 차를 개발한 이 책에는 야생초에 관한 정보와 야생초를 캐서 심고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과정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뿐 아니라 ‘들풀모듬’ ‘야생초차’ ‘십전대보잼’ 등 야생초 요리에 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책에 수록된 모든 그림은 미대를 지망했던 저자의 솜씨로 감옥에서 그린 그대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