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자!
  • 영광21
  • 승인 2004.06.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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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정민의 인도 방랑기
지난 2월부터 2개월간 인도 배낭여행을 떠났다. 2004년 2월25일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새벽 4시20분에 일어나 호텔에서 오토릭샤를 타고 아그라포트역으로 향했다. 부랴부랴 역에 도착한 후 승차할 플랫폼 번호를 찾느라 이리저리 헤맸다.

인콰이어리룸 직원을 통해 1번 플랫폼에서 출발한다는 정보를 얻었다. 기다리는 동안 짜이 한잔을 마셨다. 이제는 누구 말처럼 짜이 맛이 너무 익숙하다. 6시20분을 얼마 지나지 않아 기차가 플랫폼에 도착했다.

이미 기차엔 자는 사람과 반쯤 잠이 덜 깬 사람 등 여러사람이 북적거렸다. 내 자리엔 다른 사람이 자고 있었고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난 2층 침대와 1층 침대 사이에 구부리고 앉아 있어야만 했다.

한참이 지났을까… 어느 역에서 승무원인 듯 한 남자가 승차하더니 나더러 표를 보자고 한다. 티켓을 건냈다. 이윽고 나는 그가 하는 말에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람 왈 “이 기차는 자이뿌르에 가지 않는다”였다. 내가 기차를 정반대로 탔다는 것이다. 순간 앞이 캄캄하고 어떻게 해야될지 막막했다.

영어를 좀 하는 한 인도청년이 다음 역에서 내려서 되짚어 가면 되고 표는 다시 끊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킨다. 그 안도감이었을까,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졸음을 참을 수 없었다. 갈아타야 하는 다음 역에 다다를쯤 인도사람이 날 깨웠다. 고마울 때가 있나…

기차를 내려 앞뒤로 빵빵하게 배낭을 짊어지고 길안내를 맡은 인도남자를 쫄래쫄래 따라가다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조그만 동양여자가 수백 명의 인파를 뚫고 그 인도 남자 뒤를 따라가니 얼마나 관심거리가 됐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발길 닿는 곳. 눈길 닿는 곳 끈적끈적하고 느끼한 버터남들로 인해 김치 생각이 간절하던 참인데…

그 인도남자는 역무원에게 나를 안내하고 또 역무원은 아그라 가는 어떤 일행에게 나를 부탁하고선 제 갈 길로 떠나갔다. 난 다시 혼자가 되었고 금방 온다는 기차를 무심히 기다리고 있었다. 말은 안통하구 화는나구 안되겠다 싶어서 역내의 인콰이어리룸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맘먹고 플랫폼을 벗어났다.

물어 물어 인콰이어리룸을 찾았고 직원에게 티겟을 내보이며 자이뿌르 가길 원한다고 말했다. 동양 외국인여자에게 새치기를 양보한 인도인들의 인심덕에 빨리 차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차비는 84루피(Rs) 비싼 감이 없지 않았지만 오로지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생각할 틈도 없었다.

그런데 날 계속 따라다니던 인도남자들이 내 티켓을 보더니 2인 티켓이라고 한다. 카운터로 달려가 안되는 영어와 몸짓으로 따졌더니 되려 내가 두사람 티켓을 달라 하지 않았냐며 화를 낸다. 나는 끝까지 1인티켓이라고 주장했고 결국 그도 수긍했다.

하지만 취소 부담금 10루피를 제하고 나머지 돈을 주겠단다.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 내가 취소 부담금을 치러야할 이유가 없다고 강력히 대응하자 티켓의 절반값을 그대로 되돌려 줬다. 한끼 식사값인데… 휴∼

내가 타야 할 플랫폼을 찾지 못한 채 무겁디 무거운 배낭을 메고 서성거린지 30∼40분. 이러다가 기차라도 들어오면 낭패라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20여명쯤 되는 인도 남자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지 않는가.(앗 깜짝이야!!)

겁에 질리려는 찰나 구세주같이 나타난 청원경찰 아저씨. 무지 키 큰 허리쯤엔 권총도 보인다. 순간 사람들이 흩어진다. 그는 나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여차저차 처한 내 상황을 아주 열심히 설명했다. 아니 그런데 이 사람이 내 말을 알아 먹는게 아닌가… 뿌듯함이란. 도와주겠다는 말에 갑자가 속이 든든해진다.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나에게 커피한잔을 건네며 나보고 “유 럭키”라고 한다. 그래 이 상황에서 벗어나서 그렇게 말하나 보다며 난 고개를 끄덕였다. 서너시간뒤 내 번호가 적힌 좌석으로 이동했다. 인도 사람들은 오른손으로 밥먹고 왼손으로 뒷물한다는 말은 내가 지금까지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양손 자유자재로 음식 먹고 뒷물 처리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놀란 것은 고급칸에 함께 앉았던 인텔리틱한 외모에 그 남자 오로지 오른손으로 깔끔할 만큼 음식을 먹었다는 것이다.‘아! 저게 인도의 다름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함께 동행하는 청원경찰 아저씨 정말 우연일까.

자신도 이 기차를 타고 자이뿌르 까진 안가더라도 다른 역으로 출장가는 길이니 걱정말라고 나를 안심시킨다. 우연치고 기가 막혔다. 내친김에 아까부터 계속 궁금했던 의문을 물어보았다. 이미 내가 예약한 기차는 아침에 떠나 버렸고 지금 내가 탄 기차의 좌석이 다른 사람이 예약한 좌석이면 어떻게 하냐는 것이었다.

이 물음을 전달하는데 신문지에 그림까지 그리며 애를 썼다. 그 사람은 그러자 또 다시 내게 “유 럭키”하며 말을 이었다. 새벽에 내가 탄 기차는 반대편으로 가는 기차였다. 실제 내가 탔어야 할 기차는 인도 땅덩어리가 워낙 넓은 탓에 연착은 부지기수다.

내가 기차를 잘못 타고 반대편으로 가서 혼돈을 겪는 동안 새벽에 내가 탔어야 할 기차는 정확히 그 혼돈의 시간만큼 지연됐었던 것이다. 그때서야 왜 그가 나더러 ‘유 러키’라고 했는지 이해되었다. 나 역시 그를 만난 것만으로 기쁨이었고 행운이었다. 그는 나와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배려를 아끼지 않았으며 나의 안녕을 빌어 주었다.

난 엄청난 도움에 다만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간 복주머니를 건냈다. 그랬더니 그는 너무 기뻐하며 즐거워했다. 나 역시 기뻤다.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나라인지 전혀 모르는 인도 사람에게 한국의 복주머니를 전한 것만으로도 그에게 한국은 예전의 미지의 국가가 아닌 행복을 떠올리게 할 나라로 기억될테니까…

이성정민<대마면 복평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