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지령 400호를 맞아 100호별로 돌아본 그때 그사람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시나요?”신솔잎 곽 현 학생 자연관찰탐구대회 금상
창간호(2002년 10월23일)
영광여중 신솔잎(1), 곽 현(1) 학생이 지난 2002년 9월25일 청주 교원대에서 열린 전국학생과학탐구 올림픽대회 자연관찰탐구대회에서 금상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과학교육총연합회 주관으로 열린 대회는 학생 2인1조와 지도교사로 구성돼 전국에서 39개팀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대회는 문제를 제시하고 주제를 설정해 조사·관찰한 후 보고서를 작성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두 학생은 이에 앞서 영광교육청 주최로 열린 자연탐사대회에서 두우리갯벌을 탐구해 금상을 수상했고 장성 자연학습장에서 열린 전라남도 자연관찰대회에서도 금상을 수상해 전국대회에 참가하게 됐다.
중학교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대회는 사전에 장소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기초지식을 많이 습득하고 있어야만 가능하다.
당시 두 학생은 영어대화대회에서도 금상을 수상해 도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학습성적 또한 우수한 학생들이었다.
현재 대학교 3학년 또래가 됐을 신솔잎, 곽 현 학생은 그때 총명하고 밝은 모습으로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여성 영농스타로 홍농 최보영씨 탄생
농촌진흥청 주관 여성농업인 한마음대서 수상
지령100호(2004년 10월21일)
홍농읍 희망포도원 최보영씨가 농촌진흥청이 세계여성농업인의 날을 기념해 2004년 10월13일 연 한마음대회에서 성공여성농업인 영농스타로 선정됐다.
최 씨는 전국의 여성농업인 영농스타 17명중 한명으로 과수부문에서 선정돼 당시 이목을 집중시켰다.
홍농읍생활개선회원이었던 최보영씨는 친환경유기농법을 이용해 고품질 포도재배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그는 2001년부터 무농약 품질인증 포도를 생산하고 있다. 재배면적은 0.8㏊로 자동화시설하우스 1,100평, 비가림하우스 1,900평을 남편 하기억씨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흑설탕을 첨가 발효시킨 ‘천혜의 녹즙’을 공급해 수확한 캠벨은 22도, 킹데라는 28도까지 당도를 높였다. 또 포도판매 뿐 아니라 포도즙 주문생산과 포도식초 작업장 시설을 갖추고 식초를 생산하고 있다.
“소비자에게 청정지역의 농산물 생산과정을 체험하게 하고 우리농산물의 우수성을 알려 농업에 대한 일반인들의 의식이 바뀌도록 할 계획”이라며 프랑스나 독일의 포도농장처럼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운영할 꿈을 내비쳤던 최보영씨는 여전히 희망포도원을 운영하며 지역농업을 선도하고 있다.
영광실고 자동차 정비수준 전국 알려
노영조 학생 13개 자격증 취득 ‘자격증왕’
지령200호(2006년 10월26일)
당시 영광실고 자동차과에 재학중인 노영조(3) 학생이 2006년 9월28일 열린 제9회 전국 고교생기능경진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또 건설기계과 이지훈(3) 학생이 장려상을 수상해 영광실고의 자동차 정비수준을 전국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해 당시 화제가 됐었다.
영광실고는 평소 기능인 양성을 위해 방과후까지 1인1자격증은 물론 다자격증 취득에 특별한 지도를 하고 있어 그와 같은 높은 성과를 거뒀다. 당시 금상을 수상한 노영조 학생은 13개의 자격증을 이미 취득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영광실고 학생들 대부분은 1자격증을 이미 취득했으며 10개 이상의 자격증 소지자가 다수 있어 졸업후 취업을 활성화시켰다.
또 삼성 등 국내 대기업에서 취업의뢰가 와 입사원서를 내놓은 여러명의 학생이 합격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퇴임후 현재 영광교직회장을 맡고 있는 최병래씨가 2006년 9월1일자로 부임해 와 교장을 맡고 있었으며 당시 최병래 교장은 학생들의 진로지도에 관심이 많아 자격증 취득은 물론 취업에 높은 관심을 기울였었다.
당시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지역에서 기증한 폐자동차를 활용해 기능을 익혔다.
“어머니가 든든한 남편이자 자식”
군남면 김순자씨 104세 시어머니 지극봉양
지령300호(2008년 10월23일)
2008년 10월 군남면 포천리에서 104세 된 시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며 살고 있는 85세된 김순자씨를 마주했었다.
염산 축동리 죽장마을이 고향인 김 씨는 18살 이곳으로 시집와 70년 가까이 살고 있다. 61세에 남편과 사별한 그는 시집와 지금까지 시어머니(사진 왼쪽)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당시 104세로 영광에서 최고령자였던 김 씨의 시어머니는 귀가 안 들리고 치매증세가 약간 있기는 해도 거동을 조금씩 하고 있었다.
슬하에 1남7녀를 둔 그는 자녀 모두가 출가해 외지에 살고 있으며 가까이에 사는 딸 둘이 자주 찾아와 김 씨와 그의 시어머니를 보살피고 있었다.
“나도 이제 나이가 많이 먹어 사방 군데 안 아픈 곳이 없고 늘 병원을 들락날락 하다 보니 시어머니 수발들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얼른 돌아 가셨으면 하는 마음은 없어”라고 오랜 세월 동거동락한 시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정을 밝혔던 김 씨.
그는 당시 시어머니의 대소변을 치우고 시어머니를 씻기는 일이 버거웠지만 시어머니를 남편삼아, 자식삼아 기대며 황혼을 의지하고 있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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