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내년부터 공직자윤리법 개정을 통해 ‘주식 백지신탁’을 실시한다고 행정자치부에서 발표했다. 일반인에 비해 공직자는 고급정보에 접할 기회가 많아서 직무를 통해 얻은 정보를 이용해 개인의 재산을 비합리적인 방법으로 수월하게 불리는 경우가 많다. 백지신탁은 이렇게 공익이 사익에 의해 침해당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다. 사전에 공직자의 재산을 금융기관에 의무적으로 맡기도록 함으로써 변칙적인 재산증식을 막고자 하는 것이 백지신탁을 도입하게 된 근본취지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백지신탁제도의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해온 시민단체들은 대부분 이번 행정자치부의 발표안에 대해 알맹이가 빠진 형식에 그친 조치라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그 근거로 시민단체들은 종합적인 이해충돌 해소방안이 제시되지 않은 점, 그 대상범위가 1급 이상에 한정된 점, 주식 외에 부동산과 채권은 제외된 점, 경제부처 등 직무관련성이 높은 공무원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점, 제17대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등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 점, 대상 금액기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여론의 향배가 이렇다보니 여야 정치권은 주식 외에 부동산과 채권을 신탁대상에 포함시키고 대상범위도 1급에서 4급으로 확대하는 한편, 제17대 국회의원들에게도 예외없이 적용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를 하면서 국민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
이런 정치권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자본주의의 근본취지를 훼손시키는 공산주의적 발상’이라는 케케묵은 색깔론으로 반발하고 있다. 또 사유재산권을 침해하고 공무담임권을 제한하므로 헌법위반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백지신탁의 기본정신조차 모르면서 제도도입의 부작용과 문제점만을 부각시켜서 불안을 조장하며 ‘시대적 요구’에 역행하는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미 연방법원의 판결문이다. “
가장 선한 사람조차도, 정부를 대신하여 그가 집행하는 사업에 의해 그의 재산이 영향을 받는다면 공명정대하지 않은 판단을 할 수 있다”라고 표현한 판결문이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미국이나 캐나다 등 개인의 재산권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에서 폭넓게 인정되고 있는 백지신탁은 결국 국민들을 위한 제도이면서 공직자들을 위해 마련된 제도이다.
직무수행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보장하고 정경유착과 변칙적 재산증식의 위험성을 제거하는 공익적 가치가 훨씬 큰 제도로 재산의 존재형태를 잠시 변형시킨 후 공직을 마친 뒤에 재산을 찾아가면 되는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백지신탁의 도입취지에 공감하고 있다. 아직은 보완되어야 할 내용이 많고, 세부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도 많아서 갈 길이 먼 백지신탁제도는 우리 사회의 건강에 반드시 필요한 제도이다. 한껏 부풀어 오른 국민적 기대감을 충족시킬 수 있는 제도가 탄생하여 공직부패의 척결과 정치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
정치권과 공직사회가 국민들에게 지금 보여주어야 할 것은 보다 완벽에 가까운 백지신탁제도의 시행이지, 색깔론을 들먹이며 제도시행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다. 이념적 공세를 가하며 물타기와 지연작전이란 걸림돌을 놓아 제도시행을 방해하는 모든 행위는 국민적 열망을 가로막는 반역사적 행위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박찬석 / 본지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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