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벌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던 일이 끝내 벌어지고 말았다. 민간인 김선일씨가 미국의 탐욕에 의해 이라크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살려달라!”는 고인의 절규가 여전히 귓가에 생생하다. 22일 밤늦게까지만 해도 생존설이 유력하여 국민들 모두는 한가닥 희망을 가졌는데, 불과 몇 시간 뒤인 23일 새벽 2시경 생존의 희망은 참수라는 절망이 되어 날아들었다.비보가 전해지자 한국은 물론이고 온 세계가 충격과 안타까움에 휩싸였다. 치안이 불안하다고는 하나 무장군인도 아닌 민간인이 피랍돼 살해된 것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정부의 추가파병 결정 이후 그만큼 이라크 상황이 악화됐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지난 21일 김씨 피랍소식이 국내에 첫 보도된 이후 대통령 이하 한국정부 관계자들은 김씨의 무사귀환을 위해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공언했었다. 그러나 이 말은 결과적으로 빈말이 되고 말았다.
김씨를 납치한 이라크 무장세력은 한국정부가 24시간 내 이라크 철군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김씨를 살해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김씨 피랍소식이 전해진 당일 외교차관은 기자회견에서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은 재건을 위한 것으로 (파병)원칙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추가파병이 논의된 이후 정부는 줄곧 이라크 파병은 평화와 재건을 위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해 왔다. 그러나 절반이 전투병으로 구성된 추가파병 부대를 보고 이같은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이라크인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자국민이 납치돼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는데도 정부 당국이 마치 이를 강건너 불구경하듯 ‘원칙론’만 읊조린 것은 적절한 태도였다고 할 수 없다. 우선 목숨부터 구하고 볼 일이었다. 김씨 피랍소식 이후 네티즌들은 ‘국민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고 외쳤으나 결국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되고 말았다.
문제는 이같은 희생이 김씨 혼자만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이라크에서 철군했지만 당초 파병국의 일원이었던 스페인에서 발생한 대규모 열차 테러사건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한국정부가 추가 파병을 강행할 경우 그와 같은 테러가 이 땅에서 발생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런 점에서 김씨의 피살소식이 전해진 직후 파병으로 맞서 이라크 저항세력을 응징하자는 일각의 감정적 대응은 대단히 위험한 측면이 없지 않다. 자칫 상상하기도 어려운 엄청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라크에서 철군을 결정한 스페인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상기해야 한다.
미국의 대통령인 부시에게 이라크는 국익의 문제이다. 석유통제라는 미국 지배세력의 이익이 고스란히 걸려 있다. 그래서 제멋대로 이라크를 야만이라고 부르고, 수많은 미국인이 목숨을 잃어가는데도 끊임없는 여론조작을 통해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대통령인 노무현에게 이라크는 무엇인가? 대통령이란 직업만 같을 뿐, 두 사람은 모든 면에서 다르다. 처한 환경도 다르고 유권자에 대한 약속도 다르다. 국제무대에서 ‘들러리 이중창’을 불러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더 이상 김씨와 같은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국정부는 이제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대안을 내놔야 한다. 바로 추가파병의 철회를 심각하게 고려하는 길이 대안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어리석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한국정부와 국회는 조속히 이 문제를 결정해야 한다.
박찬석 - 본지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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