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과 어우러진 구수한 노래가락 전달
서민과 어우러진 구수한 노래가락 전달
  • 박은정
  • 승인 2004.07.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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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문화예술인51 - 향토민요 이석남
“예전엔 소리를 통해 시름과 한을 달랬지요”

민요하면 오늘날 우리들이 방송이나 레코드를 통해 들을 수 있는 통속민요만을 생각하기
쉽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민요박물관이라고 할만큼, 농촌이든 어촌이든 산간벽지든 구성진 민요 몇 가락이 없는 곳이 없다. 모심는소리 논매는소리 노젓는소리 미역따는소리
등짐소리 방아찧는소리 베틀노래 상여소리 신세타령 시집살이노래 아이어르는소리 자장가 등 이러한 소리들을 ‘향토민요’라고 한다.

대마면 월산마을에 지금은 부르지 않아 거의 잊혀진 향토민요를 잘 부른다는 할머니가 있다기에 찾아 나섰다. 월산리 2구 마을 회관을 마주보고 있는 마당에 가꿔진 꽃밭이 예쁜 넓고 깨끗한 집에서 이석남(74)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할머니는 대마면 복평이 친정으로 일찍 부모를 여의고 17살에 이곳으로 시집와 60년 가까
이 살고 있다. 나이든 노인들의 희미한 기억속에 남아 있는 향토민요를 이석남 할머니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가 듣는 통속민요는 전문 소리꾼들에 의해 널리 알려진 민요이지만 향토민요는 입에서 입으로 그냥 흥얼흥얼 전해져 내려와 사람들의 삶의 냄새가 물씬 배어있고 소박하고 순수한 토속적인 체취가 물씬 풍긴다. 이석남 할머니도 어릴적 어머니 할머니가 부르는 노래 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배운 것이다.

이 할머니의 향토민요는 얼마전 KBS ‘6시 내고향’ 프로그램에도 소개가 되는 등 나이가 들어 세상을 많이 떠나는 노인들 중 유일한 향토민요 보유자로 주변에서 무척 소중하게 할머니를 여기고 있다.

이 할머니는 마을 부녀회장을 30년 넘게 했다. 워낙 활동적이고 활발한 할머니는 농한기인 겨울철이나 농번기 때도 비가오거나 한가할 때는 마을 회관에 주민들을 모아놓고 장구장단에 맞춰 함께 소리를 하고 음식을 나누며 민요를 즐겨왔다.

“일을 하면서 지치고 힘들 때 소리 한자리 하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흥도 나고 좋지”라며 이석남 할머니는 지난 시절 부르던 담배타령 아이어르는소리 시집살이노래 등을 들려줬다.

구야 구야 담방구야/ 동네 월산이 좋다더니/ 내나라 국이 좋다더니/ 이나라 국을 왜 왔느냐/ 은을 줄까 금을 줄까/ 은도 싫고 금고 싫고/ 담방구 씨를 받어갔고/ 저기저기 저산밑에/ 하첨 대첨 뻗었더니/ 낮으로는 볕을쬐고/ 밤으로는 이슬맞고/ 감잎내고 송림내어/ 점점자라서 니모빤듯헌/ 장구칼로 어슷어슷 비어놓고/ 처녀쌈지도 한쌈짓고/ 총각쌈지도 한쌈짓고/ 잉글잉글 숯불일고/ 방방구대로 한방을 피웠더니/ 청룡황룡 되었구나~

쩡가쩡가 쩡가야/ 쩡가쩡가 쩡가야/ 어화둥둥 쩡가로구나/ 어디를 갔다가 이제왔나/ 이골목 저골목 찾아왔나/ 둥둥둥둥 내아기 새끼/ 옹기전에 가겠던가 옹구스럽게 생겼내/ 거구전에 가겠던가 니모번 듯 잘생겼다/ 장롱안에 요물렌가 요리저리 잘생겼다/ 강원도 반대추는 옹굴스럽게 잘 생겼다~

시집가든 삼년만에/ 오른손에 호무들고/ 외악손에 수건들고/ 택화같은 나는별에 / 한고랑을 메고보니/ 낮 절반이 되었구나/ 어진밤이 되앗구나/ 씨엄씨 모르게 고추장먹고/ 산넘어 가면서 고왔던 똥쌓네/ 과부야 과부야 과부의 사정은 과부가 알고/ 과수의 사정은 과수가 안다~

이렇게 같은 제목의 민요라 하더라도 지방에 따라 가사와 가락이 제각기 다르다. 향토민요는 주민들의 생활속에서 발생해 전수된 것으로 향토 문화성이 농후하고 음악적 특성에 있어 더욱 민중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마을 사람들이 부르면서 전승시켜 가는 노래이기 때문에 세련된 맛은 적으나 그 마을의 삶과 정서를 함축하고 있는 훌륭한 문화적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슬하에 3남1녀를 두고 있는 이석남 할머니는 5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지내고 있다. 약간은 외롭고 허전할 것 같은 할머니지만 그 모든 공허를 노래 가락에 실어 버릴 것은 버리고 채울 것은 담으며 그렇게 조용히 황혼을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