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찬 석 / 본지 편집인oneheart@yg21.co.kr
우리는 모두 처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순진무구하게 삶을 시작한다. 어린아이는 혼자서 살아갈 수 없고 돈의 법칙과 관련해 어떤 기술도 이해도 없다. 생존을 유지하려면 부모나 다른 어른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나이가 들면서 자신에 대한 책임을 배우지만 그 과정에서 어린 시절의 순수한 마음을 잃어가니 이는 현대인의 비애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성인에게 요구되는 심각한 과제를 해내느라 분투하다가 삶의 신비를 전해주는 호기심을 잃고 완고해지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순수라는 단어는 사전에 ‘악행과 접하지 않아 죄의식이나 잘못에서 자유로운 상태’ 또는 ‘딴 생각이나 그릇된 욕심이 전혀 없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람이 순진무구하면 돈에 관해 알고자 하는 열망이 거의 없다. 이들은 돈을 벌고 저축하는 법과 재정관리를 삶의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다.
순진무구한 인간은 관대한 본성을 지녀 따뜻하고 유쾌한 친구가 돼 준다. 때로는 예술적이고 창의력이 넘치며 모험심이 강하다. 하지만 돈에 관해서는 그들 대다수가 문외한이어서 돈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 이 유형의 몇몇은 살림살이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돈을 어떻게 다루는지 투명하게 보여주지 않는 가부장적 가정에서 유복하게 자라났다.
또 다른 몇몇은 사는 내내 돈 때문에 고생했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떻든 간에 다른 사람들처럼 결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확신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 그 배경이 어떻든 간에 순진무구한 사람들은 돈이란 불가사의하고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것이라고 마음속 깊이 느낀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가장 우울한 특징은 자신을 희생자로 여겨 재정문제를 남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순진무구한 사람들이 이렇게 극단으로 치닫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특별히 자기 삶에 행복해하지 않으며 돈과 성공적으로 관계를 맺고 이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고 경제상황이 나아지길 막연히 기다리며 아무 목적없이 대충 사는 사람이 많다.
철저히 순진무구한 사람들은 자신의 이상을 버리지 않는다. 그것이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그 능력을 확신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성향의 낮은 수준에서는 실수와 잘못을 무능의 증거로 여긴다. 좀 더 높은 수준에서는 실수와 잘못을 통해 뭔가를 배울 기회로 삼는다.
자신의 특성을 인식한 순진무구한 유형의 사람들은 다른 유형과 마찬가지로 힘든 치유과정을 거치며 다른 사람에게 깨달음을 준다. 성숙한 순진무구한 사람들은 오래된 믿음에 집착하고 자기 파괴적인 여정을 겪은 경험이 있다. 동시에 이들은 자기 연민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기에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동정하지 않는다. 동정과 공감의 차이를 극명하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하거나 상처받은 사람들이 내면 깊은 곳에 갖고 있는 능력과 지성, 장점을 존중하고 도우려 한다. 자신의 진정한 힘을 알고 믿게 된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회복력에 대한 확신을 주고 장애를 이겨내는 능력을 전할 수 있으며 자신을 볼모로 잡고 있는 중독이나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한국사회에서 순진무구하다고 할 수 있는 계층과 집단은 기득권 세력들에게 철저히 이용만 당하고 정당한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전형적인 순진무구한 사람이었지만 세상을 바꿨다. 인류 역사상 가장 똑똑한 사람으로 인정받은 사람이지만 젊은 시절 돈과 관련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학문과 관련해서도 어정쩡하여 힘든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지나간 모든 것에 무한히 감사하고 현재의 모든 것에 한없이 봉사하며 미래의 모든 것에 최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사는 세상으로 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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