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원<영광고 1-5>
구룡목 언덕배기
선산 아래
추석 갓지나
땅콩 캐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쇠스랑에 놀라
쪼글쪼글한 얼굴로
줄기째 우루루 달려 나온다
“고놈들 실하게 잘 여물었다”
호미등으로 살살 달래듯
흙 털어내면
비로소 햇살에 눈이 부시다
펴지지 않는 허리
자식들 입에 들어갈 연분홍 고소함에
하루해가 아까운데
가진 것 없이 다 내어주고
한 잎도 가지지 못한
꽃무릇 연초록 줄기
우리 할머니 닮았다
자식 위한 그 마음
붉은 실타래 엮고 또 엮은
족두리 이고
가을 들녘이 환하다
금상(고등부) / 부정
이란희<해룡고 2-3>
아버지는 나를 볼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의 두 눈이
아버지는 나의 두 다리였다.
열살 때 찾아 온 소아마비
계속해서 찾아오는 근육통과
입김조차 뜨거운 밤이 되면
아버지의 차디 찬 무쇠손은
불덩이 된 내 볼과 이마를
안쓰럽게 감싸쥐었고
아버지의 깜깜한 두 눈에선
밤보다 더 캄캄한 이슬이 반짝
아버진 닫은 두 눈 마음으로 뜨고
꽃무릇 비늘줄기 달이고 달여
내 아픔 달랠 수 있기를
당신이 대신 아플 수 있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꽃무릇 달인 물이 아픔을 달랬나
아버지 소망이 하늘에 닿았나
이제 내 다린 아프지 않다
나는 이제 아버지를 볼 수 없다
나의 다리가 되어 주던 아버진
꽃무릇 만발하던 날 꽃이 되었다
이제 나는 아버지를 볼 수 없다
금상(중등부) / 엄마의 늦사랑
이시연<영광여중 2-3>
“엄마 벌써 일어나 있었어?”
“어! 지영아 일요일인데 벌써 깨어났니? 아직 일곱시도 되지 않았는데”
엄마는 다급히 화장품을 숨기며 나에게 말했다. 정성스럽게 가꾼 검은색 머리가 나를 보며 웃는 듯 했다.
평소 머리를 한올 빠짐없이 노란 고무줄로 올려 묶고 안경을 쓴 채로 컴퓨터 앞에서 끙끙 머리를 짜내며 글을 쓰던 작가 박현주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는 것은 30대 초반의 멋들어진 여성이었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안방을 빠져 나왔다.
목이 타 냉장고를 열어 플라스틱에 들어있는 차가운 물을 들이켰다.
저 멀리서 조심히 현관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너무나 큰 자동잠금 기계의 전자음이 울려 퍼졌다.
그건 두달전 주말 일이었다. 낄낄대며 개그 프로그램 재방송을 보고 배를 아삭아삭 베어먹는중 갑자기 엄마의 휴대전화가 웅웅 대며 울렸다.
“씨… 뭐야?”
나는 툴툴대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박현주씨 휴대전화 아닌가요?”
“맞는네요. 저는 박현주씨 딸인 박지영이에요. 무슨 일로 전화하셨죠?”
평소 엄마의 원고 문제로 걸려온 전화라던가 여러가지 작품관련 전화를 받아본 경험이 많아 평소처럼 웬만한 전화면 끊어 버릴려고 생각했다.
“그럼 엄마한테 바꿔주겠니? 정세환이라고 하면 알거야.”
나는 수상쩍은 마음을 지우지 않고 전화를 엄마한테 전했다. 순간 엄마는 얼굴이 굳은 채 전화를 들었다.
“정세환… 왜 지금에서야 나타났어?”
평소 조근조근한 말씨가 거의 비명에 가깝게 올라갔다. 전화를 건 남자는 엄마를 달래는 내용의 말을 계속 늘어놓는 것 같았지만 분노로 일관해 상대했다. 하지만 차차 진정을 하고 말을 이었다.
“벌써 17년이 지났다고! 당신이 임신한 나를 버리고 해외로 도망간지… 그동안 나 지영이 키우면서 화냥년이라고 욕먹고 손가락질 받고 학교생활까지 당신이 망쳤어. 그런데 왜 이제야 나타났냐고….”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고등학생일때 정세환으로 인해 임신을 한 뒤로 편히 있을 틈이 없었다. 특히 내가 태어나서는 퇴학을 신청하고 평소 자신있던 문학소설에 뛰어들어 나를 정신없이 키우신 우리 엄마. 그리고 17년이 지난 지금 자신의 생을 송두리째 망친 남자가 만나자고 한다. 엄마는 윗입술을 꽉 물었다.
“미안, 당신과 나는 이미 끝났어. 전화 고마워 그리고 다신 전화하지마.”
그렇게 엄마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말없이 다가가 엄마를 꼬옥 안아 주었다. 그동안의 설움이, 슬픔이, 외로움이 울음으로 터져 나온 엄마를…. 어느새 나도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지영아, 엄마… 괜찮겠지?”
“으응 엄마 괜찮아. 다시 시작하는거야…”
그후로 그 남자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는 이번에 출간한 책이 그럭저럭 인기가 좋아 여러모로 창작의욕이 샘솟는다 했다. 나는… 뭐 슬슬 고입준비를 시작해 이리저리 정신없이 돌아다닌다. 가끔 둘밖에 없는 집이 적적하지만 상관없다. 항상 그래왔으니.
마지막으로 엄마는 요새 연애에 한창 열을 올리는 중이다. 상대는 30대 노총각 인디밴드의 기타리스트, 나도 만나보았는데 엄마의 빈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 안심이었다. 이제 한사람에게만 매달려 힘들었던 상사화 같은 사랑을 버리고 제대로 된 사랑을 해주길 바란다.
은상(고등부) / 상사화 할아버지
백유진<법성고 1-5>
상사화相思花는 이름 그대로 서로 생각하는 꽃이다. 잎이 먼저 피고 그 후에 꽃이 피는데 이 모습이 잎과 꽃이 마주할 수 없어 서로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의미에서 상사화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보통 꽃들은 같은 뿌리에서 잎과 꽃이 함께 피어나는데 유독 상사화만 그렇지 아니하니 겉모습만 보았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슬프고 애달파진다.
상사화의 의미를 알고 나니 이 꽃의 잎과 꽃잎이 마치 나와 할아버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피어나 먼저 지는 잎은 할아버지, 늦게 피어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꽃은 나를 닮았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 당시 나의 언니는 3살이었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언니는 얼마나 예쁨을 받았을까 생각하니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하다. 다른 친구들은 할아버지와 함께 살거나 명절 때마다 찾아뵙기도 하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계절이 되면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더 커진다. 이글을 쓰는 지금은 하늘이 높고 맑은 계절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고 한다. 나의 얼굴을 보지도 않으신 채 가버리신 할아버지가 야속하지만 할아버지를 빼앗아간 하늘이 더 원망스럽다.
나는 내가 엇나갈 때마다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철없이 방황했던 사춘기는 두번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 덕분에 내 곁에서 나를 바라보는 부모님이나 위에서 날 지켜주시는 할아버지가 마음 아프셨을 테니까.
언제고 어느 때고 할아버지는 날 지켜보고 지켜주시리라 믿는다. 비록 나보다 먼저, 나와는 운명을 달리 하셨지만 나의 화려한 미래를 위해 함께 애써 주실 할아버지께 이 글을 바친다.
연세가 많아 부모님을 버리는 이들. 그동안 키워주신 은혜도 모르는 이들은 반성 좀 하고 깨달았으면 좋겠다. 있을 땐 귀찮더라도 없으면 더욱더 그리워진다는 것을, 그때서야 후회해봤자 이미 소용없다는 것을.
그러니 감사하는 마음과 지금까지 받았던 사랑을 이제는 돌려드려야 한다. 창피해하지 말고 늦기 전에 어서 빨리….
은상 (중등부) / 나를 위한, 너를 위한
배규나<영광여중 1-3>
저에게는 소중한 저의 가족이 있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제 하나뿐인 오빠까지. 제가 5살 때 할아버지 댁에 얹혀 살게 되었습니다. 오빠는 초등학생 2학년 때니까 얹혀 산지 9년이 되어버렸네요. 매일매일 할머니께서 말해 주시던 말씀이 있는데 그건 바로 “나를 위해 살지 말고 다른 이를 위해 살아라.” 어린 저는 그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중학생이 되니 그 말을 왜 하셨는지 이해도 되고 공감도 가니까 할머니를 조금 다르게 본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할머니는 자신을 위해가 아니라 남을 위해 살아온 것 같아요. 내가 손녀라서가 아니라 오빠가 손자여서가 아니라 뭐든지 퍼주려고만 하던 할머니. 이제는 자신이 손수 만들어준 음식도 이웃 옆집 할머니와 같이 나누어 드시거나 재료를 아낌없이 주시고 인자한 웃음을 지을 때 그만 한게 없을 꺼라 생각했어요. 그럴 때마다 바닥으로 내려가는 성적표가 미워 보이고 공부도 원래 안하면 커서 후회한다는 말도 맞는데 그 말을 듣고 오히려 성질을 부리는 제가 정말 죽도록 미웠어요.
그렇게 절 생각해주시는 분들인데 모진 말만 내뱉고 삐딱하게 서서 얼굴에 ‘나 사춘기에요’라고 써져 있는 듯한 표정. 할머니는 제가 미웠을텐데도 군말 한번 안하셨어요. 그때마다 제 가슴이 찌릿찌릿 할 정도로 안 좋은 표정을 지으셨는데 그만큼 후회하고 또 후회했어요. 유난히 굳은 살이 많이 박힌 손으로 절 달래실 때 왠지 모르겠지만 펑펑 울었어요. 제가 우는 만큼 똑같이 우시는 할머니가 저의 눈물샘을 더욱더 자극했어요. 계속 눈물이 났지만 참았어요. 할머니께서 더 우실까봐 조마조마했으니까요.
이번 9년 동안 할머니와 살아왔는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그 전 5살 때 아주 작았던 꼬맹이 때에 사준다던 빨간 자동차도 선물해드리고 싶고 할머니께서 좋아하시는 전병도 한가득 담아서 선물해 드리고 싶어요. 물론 할아버지 선물도 사 드릴거구요. 상사화축제 덕분에 예전 일도 기억하고 해드릴 말도 생겼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고맙고 사랑해요!”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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