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쌓인 것처럼 바위 벼랑 하얗게 빛나는 명산
눈 쌓인 것처럼 바위 벼랑 하얗게 빛나는 명산
  • 영광21
  • 승인 2004.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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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 65 - 곡성군 설산(522m)
곡성 8경에 동악조일이요, 설산낙조라는 말이 있다. 동악산의 일출과 설산의 낙조를 곡성의 첫번째와 두번째 경승으로 뽑은 것이다. 또 옥과팔경에는 설산 기운과 사자앙천이라 하여 설산에 드리운 구름과 그 옆산인 괘일산(약 455m)의 형상을 함께 경승으로 꼽고 있다.

곡성의 10대 산을 꼽을 때도 동악산 다음으로 설산을 꼽는다. 설산은 낮지만 그만큼 곡성땅에서는 꼽아주는 명산이다. 설산은 전남과 전북의 경계이자 곡성이 담양과 경계를 이루는 군북서단에 솟은 산이지만 산세가 험상치 않아 예전부터 명산의 대열에 끼었다.

호남정맥 마루금에 솟아 담양 삼성산에서 맥을 받아 광주 무등산으로 맥을 넘겨주는 이 산은 멀리서 보면 눈이 쌓인 것처럼 정상부 바위 벼랑이 하얗게 빛나 그런 이름을 얻었다. 설산은 규사성분이 많이 함유돼 있어 하얗게 빛나는 것이다. 일설에는 부처가 수도한 여덟 개의 설산성지의 하나인 성도를 따서 붙였다고 한다.

수질이 좋지 않은 옥과땅에서 물맛이 좋은 금샘(金井)이 산자락에서 솟고 임진왜란 당시 유팽로(1564∼92) 의병장군이 쌓았다고 추측되는 설산고성이 성터만 남기고 있다. 설산 정상 밑에는 수백평의 넓은 개활지가 있어 주민들은 이곳을 성터라고 부르지만 기록에 전하는 것은 없다.

주민들의 이야기는 “이곳에 헬기장을 닦을 때 기와조각과 촛대 따위가 발견된 적은 있다”고 전한다. 예전에 옥과초등학교 학생들은 이곳으로 소풍을 오곤 했지만 지금은 웃자란 풀 때문에 소풍은 커녕 발을 옮길 수도 없다. 유팽로 장군은 임진왜란때 금산전투에서 사망했는데 그의 말이 고향집으로 돌아와 쓰러져 죽자 그 갸륵한 뜻을 기리기 위해 무덤을 만들어 줬다(옥과면 합강리 의마총).

최근 1987년에는 유림들이 입면 송전리들에 의마비도 세워줬다. 설산의 특이한 산세로 인해 명당에 얽힌 설화가 유난히 많다. 기러기형국이니 사자형국이니 하는 명당이 많다고 하는데 큰 가뭄이 들면 무덤 때문이라고 생각한 주민들이 호미를 들고 나서서 봉분들을 송두리째 파헤쳐 버리기 일쑤였다고 한다. 동네에 저수지가 생기기 전의 일이다. 지금도 산자락 곳곳에 당당한 모습의 무덤들을 여럿 만날 수 있다.

설산 자락에 있는 오래된 사찰로는 신라 원효대사와 같은 시기의 고승인 ‘설두화상’이 수도했다고 전해지는 수도암이 있으나 당시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1928년 임공덕 보살이 창건한 암자가 현재 그 터에 들어서 있다. 설산 수도암에 있는 수령 100년이 넘는 매화나무와 잣나무고목은 문화재 자료 제147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봉두산 태안사 큰스님으로 있던 청화스님이 최근에 창건한 성륜사는 매우 규모가 큰 사찰로 옥과미술관 옆에 자리하고 있다. 남화의 대가 아산 조방원이 전남도에 기증한 작품들과 전라도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는 미술관이다.

산행길잡이
설산자락 깊숙한 곳에 설옥마을이 있어 이곳까지는 마을 진입로가 잘 나있다. 옥과중학교에서 약 3km 여기서 설옥제(저수지)를 들어 난 임도를 따라 약 1.5km 오르면 설산 수도암 밑에 이른다. 임도는 암자 밑에서 산자락을 끼고 설산과 괘일산 사이 안부로 계속 이어진다. 수도암 계단 바로 밑에서 왼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약 15분쯤 산자락을 돌면 절벽밑 샘에 닿는다. ‘성금샘’이다.

이 성금샘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시쳇말로 기도발이 잘 먹혀 지금도 치성 드리러 오는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설산 정상부에는 오석을 잘 다듬어 정상 표지석이 서있고 벼랑을 이룬 동쪽사면으로 철책이 처져있다. 수도암에서 부지런히 오르면 1시간 안에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산행코스
▶ 설옥리∼수도암∼정상∼수도암∼설옥마을 3시간
▶ 설옥리∼수도암∼정상∼괘일산∼관광농원∼옥과리 4시간20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