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공동체의 생산성 극대화하며 소리를 통해 기풍 구현
■ 호남학 이야기 - 영광 서남면 들노래 ①전남대 호남학연구원(원장 김신중) 주관으로 5월2일 영광문화원에서 <향토사가에게 듣는 호남학이야기> 2012년 첫 번째 강좌가 열렸다.
<호남학이야기>는 전남대 호남학연구원이 광주·호남지역 각 문화원과함께 호남학 공동연구를 위한 기초작업으로 각 지역의 향토사가를 초빙해 호남학에 관한 다양하고 심도깊은 이야기를 듣는 강좌이다.
2일 영광에서 열린 <호남학이야기>는 해방이후의 영광, 영광 의병사, 서남면 들노래를 주제로 진행됐다. 본지에서는 지난해까지 52회를 맞아 전국 16개 광역시도와 이북 4도 등 20개 시도 대표팀이 출전해 각 지방 고유의 민속예술 경연대회인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금상을 수상한 ‘서남면 들노래’에 관한 역사적 전승과정과 무형문화로서의 가치 등을 2회에 걸쳐 게재한다. / 편집자 주
호남발생배경과 전승과정
‘서남면 들노래’는 영광군 군서·군남·염산 등에서 논이나 밭에서 일을 하면서 피로를 잊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는 노래로 전해 오다가 점차 사라지고 간혹 대화大禾마을에서 연행돼 오던 것을 영광국악협회 한희천에 의해 발굴돼 ‘대화 들노래’에서 ‘서남면 들노래’로 복원되어 오늘에 이른다.
대화마을은 본래 영광군 육창면 지역으로 대화마을의 지명과 연혁은 1789년의 <호구총수>에 처음 등장한다. 그리고 1912년의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 마을 명칭이 기록돼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봉기동, 대화동, 온양리, 송림동, 하광리, 봉덕리 일부와 함평군 신광면의 본전리 일부 지역을 병합해 대화와 봉덕의 이름을 따서 대덕리라 했고 군남면에 편입됐다.
대화마을은 한수寒水라고도 부르며 삼각산에서 흐르는 수원이 좋고 번창한다 해 ‘대화’라고 했다.
기록상으로 대화마을은 1789년의 <호구총수>에 등장하지만 이 마을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마을주변에 고인돌(지석묘)이 분포돼 있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시대부터라고 볼 수 있다.
‘대화 들노래’는 농경사회가 시작돼 논이나 밭에서 일을 하면서 피로를 잊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는 노래로 ‘들노래’ 또는 ‘농사짓기 소리’라고도 한다. 들노래는 전형적인 농업사회에서 품앗이를 통해 협동과 능률의 기능을 했을 것이다. ‘대화 들노래’는 토속민요의 하나로 개인 또는 집단으로 부르며 현재는 민속음악으로 연행돼 이어지고 있다.
이 들노래는 영광군 서남부지역인 육창면지역에서 주로 불렀던 노동요였는데 소리꾼들이 하나 둘 사망하고 농사방법의 현대화에 따라 점차 사라지고 군남면 남쪽에 위치한 대화마을에서 농사 때 간혹 불려졌던 농요이다.
마을앞 대화들은 삼각산에서 발원해 칠산바다로 흐르는 한수천이 있어 한발이 없는 들로 토양이 비옥해 쌀의 질이 우수해서 대화들, 대화마을이라 했다.
이 지역의 논매기는 두레라는 공동작업에 의해 이뤄졌는데 이 들노래는 두레에 참여한 농부들이 즐겨 부르던 농요로 이곳의 농요는 지금도 전해지고 전수되고 있다.
들노래(이하 서남면 들노래)의 선소리꾼으로 유명했던 박경남은 작고했고 그 뒤를 이어 박씨문중의 박균찬에 의해 지금도 옛 가락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서남면 들노래’는 음악적인 면에서 육자배기권의 소리에 메나리권의 소리가 가미되어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분포권상으로는 전남 서북부권에 속한다. 내용은 <모심는 노래>, <두름밟기 노래>, <김매기노래>, <오임쌓기>, <장원질> 등으로 구성돼 있다.
무형문화로서의 가치와 형태의 지속성
‘서남면 들노래’는 영광국악협회 한희천에 의에서 발굴되어 박균찬(앞소리꾼, 군남면 대덕리 대화마을)·배대순(앞소리꾼, 군남면 대덕리 대화마을)·이중신(앞소리꾼, 묘량면 운당리 99-14) 외 69명이 1990년부터 매년 전국민속경연대회나 여러 행사 등에 참가하면서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서남면 들노래’는 대화 들노래, 영광 옥당골 들노래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뿌리는 ‘서남면 들노래’의 원형이 그대로 전수되고 있다. 매년 남도문화재(전남민속예술축제) 등에 출연해 2010년에는 최고상을 받기도 했고 2011년에는 전국민속예술축제에서 금상을 받아 영광무형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서남면 들노래’는 영광군 서남부의 곡창지대에서 이 넓은 들판을 배경으로 마을공동체의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소리를 통해 기풍祈豊을 구현한 것이다. 서남면은 불갑산에서 발원해 흐르는 불갑천과 삼각산, 군유산 등에서 발원한 풍부한 수원을 이용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두레가 필요했고 두레를 통해 들노래가 발전했다. 이 지역 토박이들에 의하면 마을마다 두레가 섰으며들노래는 천신과 지신, 삼각산 산신의 신명을 움직이기에 족했다고 한다.
이곳의 들노래는 능률과 기풍의 의미를 넘어 소리로서 아름다움의 예술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목가적牧歌的인 생활이 그들 삶의 중심을 이룬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들노래의 상사소리에서 나타나는 호소력이 있는 가사에서 이해되어질 수 있다. 이러한 미적 정서에서 기원하는 요소들은 이들이 인생에서 인식하고, 진정한 가치를 평가하고, 즐기고, 묘사하고 행동하는 들노래를 통해 추적이 가능하다.
대화마을과 인근마을 사람들은 소박하고 서정적인 가치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들노래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리를 통해 농경사회구조, 우주론, 상징주의 등 그 무엇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가치를 두었다. 들노래를 통해 영광 서남부지역 사람들은 그들의 삶속에서 일하는 가치와 즐거움, 그들의 일상에서 상상력의 경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통찰력을 희망했다.
‘서남면 들노래’의 기능을 자연생태의 문화적 측면, 인류역사의 문화적 측면, 민속사회의 문화적 측면, 언어학의 문화적 측면으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일상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쇄락하기도 한 이러한 들노래는 농경사회에서 시작된 인간의 기능적 행위로 이 지역의 민속이나 생활속에 이런 소리들이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예술적 기능의 근거를 또 다른 의미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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