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없어져도 봉사단체는 있다”
“나라가 없어져도 봉사단체는 있다”
  • 영광21
  • 승인 2012.06.22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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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 / 전 영광군의용소방대연합회장

일흔이 넘는 연세에도 작고 정갈한 글씨체로 약력을 써 건네주는 김유철(73) 영광군의용소방대연합회 초대회장.

영광읍이 고향인 김 전회장은 영광고를 졸업하고 서울한양공과대 토목공학과를 다니던 1959년 어머님이 얼굴만 제외하고 화상을 입은 사고를 계기로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에 내려왔다. 군제대 후 다시 공부하라는 부모님의 권유에도 8남매중 다섯째였던 그는 학업을 포기하고 안식구를 만나 1963년 결혼한 뒤 1965년부터 인쇄업을 시작한지 47년째다.

김 전회장은 “모친의 휘발유 화마를 보고 1972년 영광읍의용소방대에 입단해 당시엔 초가집이 많아서 3번까지도 불을 끄러 나간 적도 있었다”는 기억을 떠올리자 부인이 “명절 때 한복을 입은 채 불을 끄러 나가기도 하셨다”며 1993년 나주소방서 영광파출소가 생기기 전까지 1, 2호차를 직접 운전해 화재현장에 출동하던 의용소방대 활동을 회상했다.

“지금의 영광경찰서 민원실 건물이 당시엔 영광읍의용소방대 건물이었다”는 김 전회장은 “군남에서 도정공장을 운영하던 탁재욱씨 공장에 불이 났을 때 새벽 6시까지 지키며 불을 꺼준 의용소방대의 고마움에 탁재욱씨가 목재건물이던 의용소방대 사무실을 헐고 슬라브 2층건물로 지어주었다”며 “현재는 옛중앙파출소 건물을 의용소방대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고 전한다.

1987년 영광읍의용소방대장을 맡으며 각 읍면 의용소방대를 주축으로 결성된 영광군의용소방대연합회의 초대회장이 된 그는 1986년 원자력발전소로 인해 피해보상을 받지 못한 일부 상인들의 반대로 1년간 개장하지 못했던 홍농가마미해수욕장을 적극적으로 정비해 1987년 여름, 해수욕장을 개장할 수 있도록 일조하기도 했다.

전라남도의용소방대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그는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인정받아 내무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으며 1988년 7년간 열정을 쏟았던 영광군의용소방대연합회장직을 이임했다.

영광군정자문위원, 영광옥당라이온스클럽 22대 회장, 영광읍자율방범대장, 민족통일 영광군 협의회장, 부정선거 감시단원을 역임했던 김 전회장은 “거짓말 하지 말고 살아라. 가정이나 일상에서 분수를 알고 넘지 말라”는 당부를 전한다.

슬하의 2남2녀를 모두 성장시킨 김 전회장은 컴퓨터를 잘 활용하는 맏아들에게 생업이었던 인쇄업을 물려주고 세상을 한켠에서 지켜보며 생활하고 있다.

‘정직, 성실, 자립’을 철학으로 삼아 “나라가 없어져도 봉사단체는 있다”는 정신으로 살아온 삶을 실천하며…
박은희 기자 blessto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