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가족소식 희노애락 전하던 전령사”
“자식 가족소식 희노애락 전하던 전령사”
  • 영광21
  • 승인 2012.07.06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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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연복 / 전 체신공무원노조영광군지부장

한국노총 산하단체로 체신공무원의 후생복지와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노력한 영광우체국의 전연복(68) 전 체신공무원노조 영광군지부장.

12살이던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일찍 사회에 뛰어든 그는 백수읍이 고향으로 백수중앙초, 영광중을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해 전구업체에서 일했다. 군 생활을 월남에서 보내며 제대한 뒤 서울에서 건설업에 종사하던 중 28살 때 결혼해 고향에 내려와 정착했다.

1973년 29세의 나이로 우체국에 취직한 그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백수 일대 집배업무를 시작으로 영광으로 와 체신공무원노조 영광군지부장을 역임하며 2003년 30년간 헌신적인 봉사정신으로 임했던 공직에서 퇴임했다.

전 전지부장은 “백수 대신리에 지금의 해안도로가 없을 때는 눈이 오면 걸어서 편지를 배달했다”며 “농촌을 다니며 편지를 배달하다 비가 오면 마당에 널어놓은 것들을 같이 거둬들이기도 하고 노인분이 농협에 가신다고 하면 자전거로 모셔다 드리고 다시 와서 배달하기도 했다”고 집배업무중 주민들과 나눴던 정을 회상했다.

“지금은 통신이 발달해서 문자로도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지만 예전에는 마을마다 전화가 1대씩 있던 시절이어서 교통사고 등 급한 전보를 전해주러 밤에도 16~20㎞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가서 전달했다”며 “어쩌다 2~3분이 거의 동시다발로 돌아가시다보면 부고장을 몇 백통씩 집집마다 전해주러 다녔다”고 말해 투철한 봉사정신으로 집배업무에 임했음을 알려준다.

지금은 일반화된 업무수단인 오토바이가 1992년부터 지급돼 집배업무가 한결 편해졌다는 전 전지부장은 “체신부 말단으로 봉사정신과 인내가 없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삶의 터전이고 생활이라고 생각했다”며 “박봉인데다 수당도 없던 때라 한달 봉급으로는 생활이 어려운지라 부인이 백수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생활을 함께 꾸려왔다”고 한다.

“항상 최선을 다하라. 직장이 삶의 터전이기 때문에 소중히 알고 요구하기보다 먼저 일하고 다음에 요구하라”는 당부를 전한다.

퇴직후 소 2마리를 13마리로 불렸으며 4,000평의 논농사를 짓고 있으면서 슬하의 2남1녀를 모두 성장시키고 영광경찰서 생활안전연합협의회 백수분회장을 2년간 역임하기도 한 전 전지부장. “체신가족이란 단어가 좋다. 다른 직장은 퇴직하면 끝나는데 6년전 (사)체신법인노동복지회가 결성돼 전남지역에서 2달에 1번씩 만나고 있다”며 “현재 4명이 참여하고 있고 만나서 담소 나누며 잊지 않고 약주 한 잔씩 나누며 살면 좋겠다”는 바램을 전한다.

박은희 기자 blessto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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