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님은 내 소리에 반하고, 저는 누님의 창무극에 반했다”
“누님은 내 소리에 반하고, 저는 누님의 창무극에 반했다”
  • 영광21
  • 승인 2012.07.1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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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멋을 최고로 가진 분 … 많이 벌었지만 없는 사람들 다 주고 돈 몰라”

■ 판소리 조통달 명창이 회고하는 공옥진 여사
조통달 명창은 대한민국의 판소리 명창이다. 전북 익산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여류 명창 박초월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며 정성껏 지도한 수제자이다.

공옥진 여사가 타계한 9일 밤 조통달 명창이 빈소인 영광농협장례식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모친이 판소리 명창이신 인간문화재 박소월 선생이고 아들은 가수로 활동중인 조관우씨다.

다음은 일행과 함께 빈소를 찾은 전북대학교 예술대 한국음악학과 초빙교수인 조통달 명창이 회고하는 고 공옥진 여사의 삶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다. / 편집자주

국악의 멋을 최고로 가진 분이다. 성악, 연기, 무용뿐만 아니라 정도 많으시고 인간미를 두루 겸한 분이다. 속에서 우러나는 진멋은 어느 누구도 이 분의 멋을 못 따른다고 생각한다. 국악의 멋, 예술의 멋, 영적인 멋을 두루 갖추신 분이다.

어릴 때부터 고생을 많이 하셨다. 부모 슬하를 떠나서 지내다 보니까 슬픔이 아주 몸에 배어서 살았던 분이다.

왜 장애인의 모션을 연구해 1인 창무극을 만드셨냐 하면 남동생이 불구자여서 맘이 아파서‘나는 사지육신이 멀쩡한데 너는 왜 그렇게 됐느냐’며 공옥진 여사가 펑펑 울다가 춤을 계발하게 됐다는….

하지만 중간중간 공연을 다니다 장애인들이 항의하였다. ‘왜 우리 흉내를 내느냐’며 고역을 치른 적이 있었다는 얘기를 서울에 계실 때 들었다. 박귀이 선생님 집이 운당여관에 있었는데 그곳에 기거하시면서 공연하러 다니셨다.

공옥진 누님은 ‘나쁜 쪽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너무 장애인을 모르니까 알라고 도와달라는 의미에서 뭔가 한 것이다’고 하셨다. 오늘날 주차장도 장애인용은 넓고 차도 반값, 톨게이트비도 반값 공연이 효과 있어서 이렇게 되지 않았나 싶다.

공옥진 누님의 아버지인 공대일 선생님은 광주호남국악원 창악(판소리) 선생님이셨다. 10대 때 광주에서 만나기도 했는데 그 뒤에 만나서는 서로 텔레파시가 통했다.

누님은 내 소리를 듣고 반하고, 저는 누님의 창무극 듣고 반했다. 영적인 소통을 하며 누님 동생 맺었다.
누님은 인정이 많은 분이셨다. 없는 사람을 그냥 보내지 않았다. 차비라도 옷이라도 용돈이라도 주셨다. 돈도 많이 버셨는데 다 줘버리고 주로 없는 사람들 나눠주고, 돈을 몰랐다.

외동딸이 시집 가고 돈을 모아줄 사람이 없었다.

가까스로 인간문화재가 됐다. 기념관도 만들어주시고 업적 기려서 후대가 본받고 이어갈 수 있는 터전을 군에서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박은희 기자 blessto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