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이 대접받는 세상, 국민의 건강이 지켜지는 좋은 세상 오길”
“농민이 대접받는 세상, 국민의 건강이 지켜지는 좋은 세상 오길”
  • 영광21
  • 승인 2004.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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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고 이경해씨의 딸 이고운·지혜씨
이경해(56) 전 한국농업인후계자연합회(한농연) 회장이 지난해 9월11일 WTO(세계무역기구) 제5차 각료회의가 열리던 멕시코 칸쿤에서 농업부문을 협상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하며 자결한 지 1년이 다 돼 간다. 미국과 다국적 농업자본의 무차별 공략에 내몰린 한국 농민과 전 세계 농민을 대신해 WTO체제에 맞섰던 농민운동가의 죽음….

막내딸 지혜(24)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1주기를 앞두고 마음이 아프다. 지난 93년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데 이어 10년만에 자신들의 곁을 떠난 아버지, 그 빈자리를 대의(大義)가 다 채워주지는 못했다. 지혜씨는 직장에 취직해 월급을 타면 가난한 아버지에게 맛있는 밥상을 차려드리려고 했는데 아버지는 그만 농민의 대지에 자신을 묻고 말았다.

아버지가 떠난 1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막내 딸 지혜씨는 한국농업전문학교를 졸업했고 둘째 딸 고운(28)씨는 아들(6개월)을 낳았다. 큰딸 보람(29)씨는 아버지를 대신해 농민 집회에 참석해 아버지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고모가 아빠의 죽음을 모르고 지내던 할머니(81)에게 칸쿤의 죽음을 사실대로 최근 전했으며, 추모제(11일·전북 장수)에 내려가 아들을 만날 예정이다.

고 이경해씨의 둘째딸 이고운(28)씨와 막내딸 지혜(24)씨. 두 딸은 어머니를 잃은 데 이어 아버지마저 떠나 보낸 슬픔이 몹시 컸을 것으로 보이는데도 꿋꿋해 보였다. 막내딸 지혜씨는 아버지를 회상하면서 조금씩 눈물을 삼켰지만 이내 쾌활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1년이 다 돼가고 있다.
(고운) 아빠가 돌아가신 1년 동안 아빠를 잃은 슬픔과 아들(6개월)을 얻은 기쁨이 교차됐다. 지난 3월 1일 아빠 무덤의 일부가 허물어졌다고 했는데 묘하게도 그날, 분만 통증이 심하게 오면서 예정보다 보름 일찍 아들을 낳았다. 지난 6월 아버지에게 손자를 보여드리기 위해 남편과 함께 묘소에 다녀왔다.

(지혜) 지난 2월 학교를 졸업한 뒤 7월에 '농어민신문사(한농연 운영)'로 아르바이트 하러 갔는데 신문사에서 아빠의 일대기를 담은 책을 만든다며 그 일을 하라고 했다. 이 일을 하면서 모르던 일들을 알게됐는데 그것은 정부의 잘못된 농업정책에 의해 아버지가 빚을 지고 집안이 몰락하는 과정의 것들이었다.

- 아버님 생각이 많이 날텐데.
(지혜) 아빠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된 시점에 학교 기숙사에서 혼자 자고 있었는데 꿈에 나타난 아빠가 '가슴이 너무 아프다, 심장이 답답하다'고 호소했는데 나 역시 가슴이 몹시 답답해 '아빠 이렇게 아프고 답답하냐'고 묻다가 깼는데 새벽 6시였다. 또 한번은 생전에 용돈 한번 편히 준 적이 없는 아빠가(울음) 밝은 표정으로 꿈에 나타나 만원짜리가 든 봉투 세 개를 주셨다. 가난했던 아빠가 생전에 못 주던 용돈을 환한 모습으로 주고 가셔서 너무 기뻤다.

- 아버님이 떠난 뒤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했는가.
(고운) 아빠는 생전에도 딸들보다 농민문제를 더 생각하고 그 일에 시간을 바친 분이셨다. 우리 딸들은 생전부터 우리 곁을 떠난 아빠를 마음으로만 간직하고 있다. 아빠가 평생을 농민과 함께 한 분이기 때문에 우리 가족 손에서 떠나보냈는데 추모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에 실망감이 크다. 무엇보다 농민과 함께 살아온 아빠의 뜻을 단체들이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 가족들의 근황은.
(고운) 언니(보람·29·결혼해 서울시 양천구 신정동 거주)는 농어민 후계자 대회나 농민대회에 참여해 아빠의 뜻을 전달하곤 했다. 나는 작년 9월 예정이던 결혼을 아빠의 죽음으로 인해 지난 5월2일 결혼식을 했다. 그리고 할머니(81)가 충격을 받고 쓰러지실까봐 아빠의 소식을 감추었는데 고모가 지난달 31일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이번 추모제에 내려가 아빠를 만날 예정이다.

- 아버님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고운) 두 가지 생각이 든다. 하나는 아빠가 살아 계셔서 농민운동을 계속 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하고 또 하나는, 아버님의 뜻이 계승돼 우리 농업이 지켜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우리 시어머님만 해도 우리 농산물을 매우 선호하는데 이처럼 신토불이를 지켜야 우리 농업이 사는 것 아닌가. 농협이 수입 농산물을 국내산으로 둔갑시킨 사건이 있었다는 언론 보도를 접했는데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 지혜씨는 농업학교를 졸업했는데 앞으로 계획은.
농업을 전공한 만큼 농사를 지어야하는데 농사지을 땅이 없어 뒤로 미루고 있다. 그리고 아빠 책을 마무리한 뒤 농업경제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 그런데 여건이(학비) 안돼 고민하고 있다.

- 농민·시민단체들이 이번 주를 아버님 추모 기간으로 정했다.
(고운) 아빠를 사랑해주시고 뜻을 기려주시는 분들께 감사 드린다. 그런데 아쉬움이 있다. 프랑스와 미국의 농민단체들이 아빠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인 것으로 안다. 또한 멕시코 칸쿤 자결 현장에는 아빠를 추모하는 행렬과 꽃들이 놓여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 분위기가 무관심한 것 같아 안타까웠다. 아버님의 뜻이 성과 없이 잊혀지고 묻히는 것은 속상한 일이다.

- 아버님의 정신을 계승하는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면 좋겠는가.
(지혜) 아빠 추모사업이 늦어지면서 조바심이 나지만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아빠의 뜻이 새겨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 아빠를 사랑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아빠가 생전에 농민들은 한 목소리를 내야 살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농민을 위해 평생을 바친 아빠의 뜻을 농민들이 세워줄 것이라고 믿는다. 아빠의 뜻이 인정되면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추모공원을 세워주었으면 좋겠다.

- 아버님 1주기를 맞아 추진중인 사업은.
(고운) 한국농어민신문사가 1주기(11일)에 맞춰 아빠의 일대기를 책으로 펴낸다. 그리고 아빠의 고향인 전북 장수에 추모비를 세울 계획이다. 그런데 장수군의 비협조로 추모비를 세울 곳을 아직도 정하지 못해 난감하다. 아빠와 생전에 가깝게 지내던 정근희 충북 음성 현대병원 이사장께서 사재를 털어 아빠의 흉상을 제작, 충북 음성군 생금면 큰바위얼굴 조각공원에 세워주셨다. 다른 지역도 아빠의 뜻을 기려주시는데 하물며 고향인 장수군이 추모비 세우는 것조차 협조하지 않아 난항을 겪고 있는 게 답답하다.

- 농민의 현실이 매우 어려운데 농민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달라.
(고운) 우리 농산물을 고집하는 소비자들이 있다. 절망하기 보다 우리 농산물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계속 싸워 나갔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아빠의 죽음을 계기로 정부가 농민을 위한 제대로 된 정책을 추진하면 좋겠다. 그래서 농민이 대접받는 세상, 국민의 건강이 지켜지는 좋은 세상이 오길 바란다. 농민들께서 절망하지 말고 힘을 잃지 않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투쟁하면 좋겠다.

- 한국농업의 위기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는가.
(고운) 외국의 농산물 개방압력에 시달려야 하는 정부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는 농민을 위한 정책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다. 농민들은 죽어 가는데 정부는 말로만 대책을 세운다고 했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1년도 안됐는데 쌀 개방 협상이 진행된다고 한다. 농민의 희생을 강요할 뿐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미래인 농업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 하늘에 계신 아버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고운) 농업정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농업정책 관계자와 정치인들이 정신을 차리도록 호통을 쳐 주었으면 좋겠다. 농업을 포기하면 국가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는 관료와 정치인들이 농민을 외면하고 있는데 대해 아빠가 호통을 치든지 해야 한다. 그리고 농민의 생명이 끊기면 국민들의 생명들도 끊긴다. 우리 농업과 농민을 외면한 국민들도 각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혜) 아빠가 우리들 걱정하지 마시고 하늘나라에서 엄마하고 같이 편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다.


조세 보베 등 세계적 농민지도자 한국 방문

세계 농민지도자 추모 발길
세계 농민운동 조직인 ‘비아 깜페시나(Via Campesina-‘농민의 길’이란 뜻)’는 고 이경해씨의 1주기를 맞아 총회를 통해 각국의 대표단을 한국에 파견키로 결정했다. 이들은 이씨의 뜻을 기리는 세계 농민들의 마음을 전하고 특히 한국 농민들의 식량주권 사수투쟁을 지지할 계획이다.

이번 방문단에는 지난 4월 총회에서 비아 깜페시나 사무총장에 선출된 헨리 사라기(인도네시아 농민연대대표)와 프랑스 농민연맹을 창설한 조세 보베가 끼어있다. 조세 보베는 지난 99년 미국 기업의 횡포에 항의하기 위해 맥도널드 상점을 트랙터로 돌진하여 구속되었지만 전세계에서 석방운동이 펼쳐지는 등 세계적인 농민운동가로 인정받은 인물이다.

해외 농민단체 지도자들은 ▶ 8일 : 국회의원과의 간담회 ▶ 9일 : 국제공동행동의 날 선포 및 WTO 분쇄 공동행동전략 토론회 ▶ 10일·11일 : 9·10일 백만대회 지지투쟁 참가 ▶ 12일 : 고 이경해씨 묘소 참배(전북 장수) 및 추모제(광화문 열린마당) 등에 참석할 예정이다. 특히 조세 보베는 12일 광화문 열린마당 추모제에서 강연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와 함께 일본, 멕시코, 스위스 등 각국에서는 이씨의 1주기를 맞아 WTO반대 공동행동의 날을 준비하고 있다.

자료제공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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