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남면이 고향인 노 전회장은 큰며느리로 군서면에서 시집생활을 시작해 시조부모, 시부모, 배우자와 자식까지 4대가 함께 13년 동안 살다 분가했다.
슬하에 2남1녀를 키우고 4,000여평의 논에 벼를 심고 1,000여평의 밭에는 12월부터 방울토마토, 청양고추, 가지 등 18가지 모종을 심어 이듬해 4~5월이 되면 광주 농약사와 양동시장에 가는 남편을 대신해 모종에 물을 주며 하우스에서 작물들을 재배했다.
새마을부녀회장으로 열심히 활동하던 그녀는 47세되던 2005년 그 당시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군서면민의 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1인 다역을 해내며 궂은 일을 나서서 했더니 주민들이 예쁘게 보시고 상을 주신 것 같다”고 상을 받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 기쁜 미소가 얼굴에 가득하다.
또한 같은 해 12월 광주시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서 전국 각지에서 모인 7,000여명의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회장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아 주변 사람들의 주목을 다시 한번 받았다.
“농삿일을 하다보니 하우스에 들어가서도 전화연락하고 운전을 못하니까 택시를 이용해 이동했으며 시간 내기가 힘들어 저녁에 빨래를 해놓고 낮에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며 “면민의 상을 타고 나서도 ‘그만 두더니 마른자리 찾는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했다”는 그녀.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던 그녀를 시기한 듯 불행이 찾아오기도 했다. 2007년 갑작스럽게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입까지 틀어진 그녀는 살만하니 병을 얻었다는 생각에 서글퍼 울기도 많이 했다 한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것은 시간이 흐르며 지금은 점점 회복단계에 있다.
직장생활하는 자식을 돕기 위해 손녀딸과 지내고 있는 그녀는 잠들기 전에 손주들 앞에서 기도를 해준다 한다. 그러면 5살된 손녀딸이 “할머니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라며 잘 주무시라고 말할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피곤이 싹 가신다고.
노 전회장은 “책임자는 항상 뒷전에서 일하고 궂은 일엔 먼저 앞장서서 하고 회원들이 절반만 따라줘도 잘하는 것이다”며 “속에 있는 말을 다하지 말고 삭이다 보면 세월이 흘러 인정해 주는 때가 오더라”고 그동안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건강이 회복되면 봉사를 좀 더 열심히 하고 싶다”는 그녀의 바램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아 봉사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박은희 기자 blesstoi@ha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