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과 ‘규제’를 모두 장악한 핵마피아들
‘진흥’과 ‘규제’를 모두 장악한 핵마피아들
  • 영광21
  • 승인 2012.12.2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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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19일에 있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촉각이 곤두서 있는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 글이 나갈 때는 이미 선거가 끝난 시점이라 부득이 선거와 관련된 글을 쓰지 못하는게 못내 아쉽다.

그래서 우리 지역에서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할 핵발전소와 관련된 글을 쓸 수밖에 없다. 적어도 탈핵이란 개념을 아는 후보가 당선됐으면 한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라는 곳이 있다. 도대체 원자력과 문화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나로선 알 수가 없다. ‘전쟁기념관’ 수준과 마찬가지로 새로 말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원자력 대신에 ‘핵’을 넣으면 말이 안 되겠기에 억지로 짜서 만든 것이 분명하다.

원자력문화가 있다면 화력문화나 수력문화도 있어야 하지만 그런 문화는 없다. 원자력문화재단은 해마다 100억원 정도의 예산을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받아 쓴다. 이 기금은 우리가 내는 전기요금에서 3.7%를 떼어 종잣돈으로 삼고 있다.

2011년 3월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진 지 넉달여 만에 열린 원자력문화재단 첫 이사회 의사록 내용을 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여기에 몇 대목만 인용해보면 그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가 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국민들의 원자력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원전 필요성에 대한 찬성률이 떨어지고 있는 등 원자력 국민인식이 달라졌고 원자력 홍보업무 시행에 여러가지 제약이 있는 상황을 보고 드린다.

(중략) 원전의 안전 관리, 방사능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언론매체를 적극 활용하고 찾아가는 원자력 교육을 하고 있으며 시·도교육청 8개와 함께 초·중등학생을 중심으로 원자력 이해 나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 과정에서 제가 직접 국민들이 우려하고 있는 방사성물질이 위험하지 않음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위험한데 위험하지 않다고 말하면 위험하지 않는가?

당시 이재환 재단 이사장의 발언을 보면 후쿠시마 사고로 급격하게 나빠진 핵발전소 이미지를 끌어올리라는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지식경제부의 지침에 따라 이런저런 노력을 땀나게(?) 했다는 설명이 담겨 있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이 지원되는 원자력문화재단의 설립 목적은 오로지 핵발전소의 필요성과 안전성 홍보에만 있다.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시민이나 환경운동가들이 낸 전기요금까지 핵발전소 홍보에 쓰이고 있다는 얘기다.

현 이사장인 천병태 부산대 명예교수는 한국원자력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 연봉은 올해 기준으로 1억900여만원이다. 그는 핵발전 정책을 수립하고 심의·의결하는 원자력진흥위원회 위원을 맡기도 했다.

1956년 문교부 기술교육국에 원자력과가 만들어졌다. 그 뒤로 반세기가 넘도록 하나의 부서(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핵에너지 ‘진흥’과 ‘규제’를 함께 맡는 칸막이 없는 시스템이 자리잡았다.

이명박 정부에 이르러서는 핵발전소 수출을 역점사업으로 밀어붙였다. 국제원자력기구는 핵에너지 안전을 맡은 기관의 독립적 운영을 위해 핵에너지 진흥 조직과의 분리를 요구했지만 우리나라는 이를 따르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상황이 변했다. 핵발전소에 대한 불안이 커지며 안전규제를 전담할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행정기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2011년 6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다.

법에 따라 그해 10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출범했다. 장관급이 위원장을 맡는 원자력안전위는 교과부에서 떨어져 나와 대통령 직속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도 주민은 없다. 불안하다는 주민의 목소리는 깡그리 짓밟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