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야기69 - 강진 만덕산(408.6m)

이러한 산세 덕에 만덕산에는 고려후기 8명의 국사를 배출하고 조선후기에는 8명의 대사가 주석했던 도량으로 전해지는 고찰 ‘백련사’와 조선 순조 원년(1801년) 신유교란으로 인해 다산 정약용이 강진으로 귀양와 10년간 머물면서 저서를 편찬하고 후학을 양성했던 다산초당이 들어서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산’은 신유교란으로 포항의 장기로 내려왔다 19일만에 풀려났지만 백서사건으로 또 다시 투옥됐다. 그는 그해 겨울 강진으로 귀양내려온 뒤 강진읍내 동문밖 이곳 저곳에서 생활하다 외가인 해남 윤씨들의 도움으로 1808년부터 이곳 다산초당에서 머물게 됐다.
그는 그런 어려움속에서도 이곳에서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명저를 남기는 왕성한 저술활동을 펼치면서 실학을 집대성하고 또한 후학자들을 양성하는 대학자로서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다산초당은 비록 초당과 그 좌우의 서암과 동암이 모두 '다산유적복원회'가 중건한 것이지만 주위 분위기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듯하다. 과거의 대학자들은 이렇듯 분노를 학문이나 예술로 승화시켰는데 왜 지금 우리들은 그렇지 못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착잡한 심정에 산을 내려왔다.
해안도로를 타고 강진읍으로 향하는 동안 만덕산은 이런 심정을 눈치채고 내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듯 했다.
산행길잡이
만덕산 산행은 범종각 뒤로 시작할 수도 있지만 옥련사에서 시작해 주차장 직전 오른쪽 등산로를 따르는 것이 좋다. 옥련사를 지나 두번째 암릉 서쪽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광산개발로 절개구간이 절벽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정상 직전의 암릉을 지날 때는 날등 대신 암릉 왼쪽 길을 택하는 것이 안전하다.
만덕산 정상은 바위봉이다. 정상으로 가려면 바위봉 몇 개를 넘어서야 한다. 위압적이면서도 만덕산 정상은 참으로 길도 묘하게 열어놓았다. 정상에 오를 틈이라곤 전혀 없는 듯 느껴지지만 파고들어서 보니 등줄기 암벽 가장자리로 길이 나 있는 것이다. 진정 만덕산 정상은 바위꽃이었다. 탐진강 하구 남해바다에 둥실 떠 있는 연꽃 한송이 바로 그 모양처럼….
하산은 정상에서 길이 잘 나있는 남릉 대신 백련사 뒤뜰로 이어지는 남동릉을 타고 내려서면 된다. 만덕산은 정상을 경계로 남과 북이 판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북릉이 달리는 야생마처럼 힘찬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남릉은 고향 뒷산처럼 편안한 분위기를 풍겨준다.
만덕산 길가이드
강진읍에서 해남과 완도를 잇는 18번 국도를 타고 가다 추도리 삼거리에서 좌회전 3번 국도를 따라 만덕간척지 쪽으로 1km쯤 가면 도로 오른쪽에 기룡마을 표지석이 보인다. 여기서 왼쪽은 백련사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500m쯤 들어가면 또다시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왼쪽길로 접어들어 옥련사 오른쪽 길을 따르면 강진 광업이 나온다.
산행코스
▶ 옥련사∼암릉∼칼릉선∼마덕산정상∼백련사 3시간30분 소요
▶ 다산초당∼삼거리∼마당봉∼백련사∼암자∼만덕산정상∼동복암릉∼칼능선∼옥련사 4∼5시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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