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문화예술인 60 - 상부소리 박하진

에헤~에헤~이히 에~에 에히~가난~보살
황천길이 멀고 멀다드니 이제 가시면 어쩔라요
어넘 어넘 어이가리 넘자 어화넘
어이를 갈거나 어이를 갈거나 황성길 내길을 어이를 갈거나
어넘 어넘 어이가리 넘자 어하넘
북망산천이 머다드니 저건너 인산이 북망이로다
어넘어넘 어이가리 넘자 어하넘
황천길이 머다드니 다리가 아파서 못가것소
어넘 어넘 어이가리 넘자 어하넘
인제가시면 언제나 오실라요 오마는 날이나 알려주오
어넘 어넘 어이가리 넘자 어하넘
높다란 상사봉이 평지가 되거든 오실라요
어넘 어넘 어이가리 넘자 어하넘
나무아비타불 나무아비타불
올라간다 어넘 올라간다 어넘
산천으로 어넘 올라간다 어넘
높은디는 어넘 낮춰주고 어넘
낮은디는 어넘 높여주세 어넘
낮은디는 어넘 높여주세 어넘
관암보살 관암보살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면서 산 사람에게는 액이 들지 말고 복만 들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불리우는 만가(輓歌). 상례의식요이고 상여를 운반하는 노동요이기도 한 만가를 구슬픈 소리로 부르며 이별의 슬픔과 영원한 삶에 대한 소망을 기원해주는 박하진(71)씨. 그는 3남3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대마면 송죽리 의촌마을을 70년이 넘는 세월동안 지키며 살아오고 있다.
만가는 전남지정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돼 있고 향도가 향두가 상두가 상부소리라고도 한다. 박 씨는 “아버지가 소리를 잘하며 흥이 많은 분이셨고 이런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어려서부터 소리하기를 좋아했지만 아버지가 못하게 해 몰래 숨어서 연습하다 들켜 밭으로 논으로 쫓겨나곤 했었어”라며 “당신은 비가오나 눈이오나 일이 있으나 없으나 북장단에 맞춰 소리를 하며 즐기셨지만 나는 일을 하라고 그랬는지 절대로 못하게만 했었지”라고 지난 몰래한 소리사랑을 밝혔다.
절대 다른 소리는 못하게 하던 박 씨의 아버지는 일을 하면서 부르는 모심기 노래는 하도록 했다고 한다. 지금은 모두 기계화가 돼 손으로 모를 심는 일이 없지만 지난 시절에는 일일히 손으로 모를 심었다. 이런 시절 일의 지루함과 힘겨움을 달래기 위해 우리 조상들은 모심기 노래를 소리꾼을 통해 부르게 하며 노동의 피로를 풀어나갔던 것이다.
박 씨는 아버지가 소리를 즐기고 장단을 맞추던 소리북을 어깨에 메고 모심기 노래를 부르며 마을 주민들과 세월을 함께 했다. 이렇게 끼와 소질을 감추고 생활하면서도 목소리 즉 초성이 좋은 박 씨는 상여를 메고 갈 때 부르는 노래이고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노래인 상부소리를 구슬프게 잘 불러 마을에 초상이 나면 어김없이 불려 갔다.
박 씨는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상부소리도 마음놓고 못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15~6년전부터 그래도 많이 하고 다녔지”라며 “상여 앞에 서서 요령을 흔들며 다양한 내용의 노래를 먼저 부르면 상여를 멘 상여꾼들이 그 뒤를 이어받아 부르고 노랫말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나 그 내용이 회심곡 등 불교 위주로 구성돼 있다는 것은 비슷해”라고 전하며 상부소리를 설명했다.
이별의 슬픔과 영원한 삶에 대한 소망을 담고 상여를 메고 가면서 부르는 구슬픈 소리인 ‘만가’를 잘 부르는 박 씨를 영광지역은 물론이고 고창 장성 함평에서도 초청해 가고 있다. 예전에는 마을에 초상이 나면 서로가 모여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 망자가 이승에 남긴 행적을 기리며 저승에서 좋은 곳으로 가도록 인도하는 뜻의 여러 의식들을 행했지만 이젠 장례문화의 변천으로 상여도 만가도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 더불어 상부소리를 구성지게 잘 부르는 이들도 찾기가 힘들다.
이처럼 변해가는 현실속에 박 씨와의 만남은 유(儒)·불(佛)·선(仙)의 내용을 모두 포함하고 삼강오륜의 도덕성 확립을 위한 교훈적면서 계몽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는 서사민요에 속하는 슬픈 상부소리를 직접 육성으로 들을 수 있는 값진 자리였다. 또 박하진씨와 같은 향토 민요가의 보존적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그런 귀한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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