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겨울날의 소중한 추억 만들기 좋은 보성차밭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겨울날의 소중한 추억 만들기 좋은 보성차밭
  • 영광21
  • 승인 2013.01.24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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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밭은 언제나 번뇌를 털어준다. 차밭 고랑을 걷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저만치 날려버릴 수 있다. 차밭을 거닐고 마시는 따끈한 녹차 한 잔은 몸과 마음의 피로까지 풀어준다.

보성차밭으로 간다. 몸과 마음이 먼저 반긴다. 밤사이 내린 눈이 그려낸 설경도 운치 있다.

활성산 자락 봇재다. 보성읍에서 회천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사방이 차밭이다. 한 번의 심호흡으로 긴장의 끈이 금세 풀어진다. 차를 두고 아스팔트길을 따라 내려간다. 내리막길이 제법 급하다.

길은 양동마을을 거쳐 영천마을로 이어진다. 차밭 고랑 너머로 보이는 저수지가 자리하고 있는 마을이다. 길의 경사가 느슨해지면서 차밭이 여기저기 보인다. 자투리를 이용한 차밭이다. 인위적으로 다듬어진 것보다 마음에 더 와 닿는다.

차나무가 없는 밭은 배추가 차지하고 있다. 그 위에 하얀 눈이 내려앉아 있다. 쪽파도 자라고 있다. 밭이랑도 구불구불 정겹다. 그 사이 길이 평탄해졌다. 거리도 한산하다.

왼편으로 들어앉아 있는 영천저수지가 제법 크다. 겨울바람에 몸 흔드는 하얀 갈대가 저수지와 어우러져 있다. 갈대는 논길에서도 하늘거리고 있다.

저수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만든 개울이 농로를 따라 이어진다. 어릴 적 고향마을 같다. 예쁘다. 풍광도 호젓하다.

길섶에 차를 덖는 집도 있다. 발효시키지 않고 찻잎을 그대로 쪄서 말리고 덖고 있다. 녹차 시음장도 보인다.
봇재에서 양동마을과 영천마을을 거쳐 2㎞쯤 내려온 것 같다.

차밭 전망대인 다향각도 저만치 멀어졌다. 녹차된장을 담그는 집이 보인다. 기와집 앞마당에 장독이 빼곡하다.

도강마을이다. 보성소리의 탄생지다. 보성소리는 송계 정응민 선생이 만든 독특한 창법이다. 정응민은 서편제의 시조였던 박유전의 창법을 이어받았다. 마을에 서편제보존연구소가 들어서 있다. 정응민 예적지도 자리하고 있다.
내친 김에 득음정(得音亭)으로 간다. 산길로 600여m 들어가서 만나는 정자는 수많은 소리꾼들이 수련하며 득음을 한 곳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 물소리가 장쾌하다. 한여름 계곡을 떠올리게 한다. 이 계곡 가에 득음정이 자리하고 있다. 아무리 목청 높여도 소리가 물소리에 묻히고 만다.

발걸음을 돌려 다시 차밭으로 간다. 도로는 여전히 한산하다. 평소에도 지나는 자동차가 많지 않는 길이다. 영천제의 물빛이 더 짙어졌다. 해도 서쪽으로 기울고 있다.

다향각으로 가는 길에 펼쳐진 차밭은 잘 다듬어져 있다. 산비탈을 따라 층층이 층계를 이루고 있다. 진초록의 카펫 같다. 그 위에 몸을 던져 누워 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차밭의 차꽃은 다 떨어지고 없다. 찻잎도 두터워졌다. 그래도 산비탈 능선을 따라 자연스레 구부러진 차밭 이랑의 선율은 그대로다. 빼어난 곡선미다. 흡사 판소리 가락의 높낮이처럼 휘감아 돈다. 내 마음결도 그 선율을 닮아 보드라워진다. 몸과 마음도 온통 진녹색으로 물든다.

풍경도 한 폭의 그림이다.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기만 하면 모두 작품사진이 된다. 사철 언제라도 하루 아무 때라도 아름다운 차밭이다.

어둠이 내려앉으면서 차밭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형형색색의 조명이 하나씩 불을 밝히며 변신을 한다. 봇재다원에 설치된 조명은 연하장을 만들었다. 산등성이 위로 네 마리의 학이 나는 형상이다. 폭이 200m 가량 된다.

차밭 골골에 은하수를 연상케 하는 터널도 만들어졌다. 차밭이 온통 반짝거리면서 눈꽃이 내리는 것 같다. 새해 소망카드를 적어놓은 소원지의 사연도 감미롭다. 동화 속 마법의 세계가 따로 없다. 황홀경이다.

그 터널을 걷는다. 내가 영화 속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다. 이 길에서 나누는 일상의 대화는 영화 주인공의 대사가 된다. 연인과 함께라면 더 좋겠다. 겨울날 낭만 데이트를 즐기기에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사랑도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겨울날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기에 차밭만한 곳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