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흥사단의 <투명사회운동본부>는 최근 서울과 경인지역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청소년의 윤리의식을 설문조사했다.
‘10억원이 생긴다면 1년 정도 감옥에 가도 괜찮다’는 설문에 중학생 28%, 고교생 48%가 그렇다고 지지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물질만능주의와 정신적인 빈곤상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견딤은 인생의 나이테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기구) 회원국중 청소년 자살률이 1위이다. 그리고 2012년 학생특성검사 결과 청소년 5명중 1명이 우울, 정서불안 등 정신건강에 빨간불을 받았다. 이는 청소년들의 정신적인 절망감과 자존감의 붕괴가 심각함을 말해주고 있다.
중국의 사마천은 황제의 미움을 받고 사형과 궁형(생식기 거세)중 마침내 궁형을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죽음보다 더 불명예스러운 고통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역경을 이겨내며 온 인류의 유산이요, 위대한 중국 역사서인 <사기>를 집필해 황제로부터 다시 부름을 받고 명예를 회복했다. 그는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실패라는 교사의 가르침을 잘 받은 사람이었다.
세기의 악성 베토벤은 매독균을 보유한 아버지와 폐결핵 환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다섯째로 태어났다. 가난과 불우한 그의 환경은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베토벤은 27세에 작곡가에게는 사형선고와 같은 청력을 잃었다.
그러나 베토벤은 청력상실은 ‘잡념에 귀를 막고 작곡에만 전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을 바꾸었다. 그리고 35세 이후에 교향곡 3번 <영웅>을, 피아노 소나타<열정>을, 교향곡 5번<운명>을, 피아노협주곡 <황제> 등 불후의 명작을 탄생시켰다.
누구나 견딘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견딤은 인생이라는 나무의 강도를 나타내는 인내의 나이테이다. 그렇기에 견딤의 기간이 곧 쓰임의 기간을 결정한다.
밝은 생각 = 밝은 운명
인생은 분명한 목적을 가진 역경의 연속이다. 역경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한 인생의 성패를 좌우한다. 고비마다 어두운 생각을 선택하면 어두운 운명이 되고 밝은 생각을 선택하면 밝은 운명이 된다.
세계적인 1류기업 제너럴 일랙트릭(GE)의 최고 경영주인 잭 웰치는 어릴 때 심한 ‘말더듬이’였다. 이는 친구들로부터 놀림의 대상이 됐다. 외톨이가 된 그의 시련은 견디기 힘든 큰 고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네가 말을 더듬는 것은 너의 생각이 말보다 빠르기 때문이다”라는 어머니의 충고에 ‘말더듬이’라는 단점을 ‘생각의 속도가 빠른 사람’이라는 장점으로 바꾸게 됐다. 밝은 생각의 선택은 마침내 잭 웰치를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존경받는 경영자로 바꾸었다.
고통은 나를 만들어 가는 스승
역사의 위인 헬렌 켈러는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3중고의 장애자였다. 세계적인 문호 세익스피어는 한 걸음도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절름발이었다. 세계적인 명작 존 비니언의 <천로역정>과 오 헨리의 작품 <마지막 잎새>는 모두 옥중에서 완성됐다.
사람은 자신을 성장시키는 피와 땀과 눈물을 가지고 있다.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없다. 모든 영광, 일체의 성공, 온갖 승리, 위대함과 고귀함은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이요, 성과이다.
해가 떠서 지는 것이 우주의 기본질서라면 시련은 신이 우리에게 준 우리들의 삶에 꼭 필요한 소품이다. 고민 하나, 고통 하나, 실수 하나마다 그 속에는 숨어있는 가르침이 있다. 그 고통의 깊이가 깊을수록 성장의 깊이도 깊다. 이는 고통의 깊이는 영혼의 깊이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내일이라는 빵을 굽기 위해서는 고통이라는 재료가 필요하다. 고통은 나를 성장시키고 보다 나은 나를 만들어 가는 훌륭한 스승이다.
인내의 시간없이 만들어지는 진주는 없다. 상처가 있어야 영롱한 진주를 얻을 수 있듯이 ‘역경지수’는 역경속에서 성장한다. 작은 실패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편리함만을 선택하는 아이에게 실패를 기념하고 역경지수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참사랑이 아닌가 한다.
최병래 / 영광교직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