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기史記의 고사성어로 통찰하는 삶의 지혜 ① - 연재에 앞서
21세기 세계 초강대국으로 발돋음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초스피드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이 한편으론 부러움을 받고 다른 한편으론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 중국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일어야 할 역사서가 바로 <사기>다. <사기>는 사람을 알고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폭과 깊이를 갖춘 최고의 고전이다.
50회에 걸쳐 1년여 동안 본지에 ‘<사기>의 고사성어로 통찰하는 삶의 지혜’를 연재하게 될 필자 김영수 영산원불교대학교 전교수는 국내에서 사마천과 <사기> 연구에 있어 손꼽히는 학자다. 연재 글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는 물론 중국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편집자 주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인용한 대목은 “산길의 오솔길도 사이사이 사람들이 자주 다니다 보면 큰길이 되지만 뜸하게 이용하지 않으면 풀만 우거진다”라는 것이었다. 두 나라 사이의 지속적인 협력과 대화의 필요성을 고전의 한 대목으로 강조한 것이다.
구미권에도 부는 고사성어 열풍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중국인이 즐겨 쓰는 관용구인 ‘동주공제(同舟共濟 : 한 배를 타고 같이 강을 건넌다)’와 ‘봉산개도, 우수가교(逢山開道, 遇水架橋 : 산을 만나면 길을 트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를 인용해 양국의 협력을 강조했고,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연설 도중 중국어 발음으로 ‘풍우동주(風雨同舟 : 비바람 속에 배를 함께 타고 있다)’라는 고사성어를 읽으며 미국과 중국이 협력해 세계 경제위기를 극복하자고 역설했다.
어쨌거나 워싱턴 정가는 물론 구미권에서 중국어와 고사성어 배우기가 한창이라는 뉴스가 낯설지 않을 만큼 중국어와 중국인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고사성어의 위상이 날로 높아가는 것만은 사실이다. 국제 사회에서 중국의 위상이 커져가는 것에 비례해 고사성어의 비중도 점점 커질 것으로 보인다.
같은 한자 문화권인 우리에게 고사성어는 그리 낯설지 않다. 우리는 주로 정치판에서 심심찮게 ‘토사구팽’ 등과 같은 비교적 잘 알려진 중국의 고사성어를 인용하곤 한다.
최근에는 경영인들도 일쑤 함축적인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데 유용한 고사성어를 즐겨 끌어다 쓰고 있다. 2, 3년전 우리나라 한 대기업의 총수는 주력사업의 중국 진출을 독려하기 위해 ‘파부침주破釜沈舟’라는 <사기> ‘항우본기’에 나오는 상당히 극적인 고사성어를 언급하여 눈길을 끈 적이 있다.
중국의 고사성어는 거의 대부분이 송나라 이전에 형성됐고 중국 역사상 파란만장한 격동기였던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년~기원전 221년) 550년을 거치면서 가장 많이 형성된 것으로 본다.
현재 중국 내에서 출간된 각종 고사성어 관련 사전에서 <사기>의 고사성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역동적인 <사기>의 고사성어
거친 통계이긴 하지만 <사기>에는 네글자로 구성된 이른바 ‘사자성어’만 약 600개 항목에 이르며 여기에 속담, 격언, 각종 명언들까지 합치면 무려 1,200여 항목에 이른다고 한다. 정말이지 고사성어의 보물창고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고사성어의 질이란 면에서 보자면 <사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단순히 글자의 조합을 뛰어넘어 당시의 민심과 세태를 절묘하게 반영하고 나아가 인간의 본질을 성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이 같은 고사성어를 만들어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렇게 탄생한 <사기>의 고사성어의 특징을 좀 더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사마천은 당시 자신이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문헌자료를 섭렵한 다음 이것들에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가장 적합한 고사故事와 성어成語를 추출 결합해 자기만의 독특하고 참신한 고사성어로 재탄생시켰다.
문헌자료 뿐만 아니라 민간에 떠도는 잠언, 속담, 격언, 가요 등을 다양하게 채취해 내용에 맞게 재가공했다. 사마천은 필요하다면 심지어 세속의 비속어까지 인용하는 과감한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사기>의 고사성어가 생동감 넘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장정신이 곳곳에 스며있는 <사기>
<사기>는 단순히 문자로 기록된 역사서가 아니다. 사마천의 치열한 현장정신이 전편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남다른 고전이다. 사마천은 10대부터 50대까지 약 40년 동안 역사 현장을 직접 탐방해 생생한 역사 고사를 취재하고 이를 기록과 대조하며 취사선택해 역사서에 반영하는 남다른 과정을 수행했다.
그리고 이를 좀 더 사실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사마천은 글자 하나를 다듬는데 갖은 정성을 다 들였다. <사기>의 인물들이 그토록 생동감 넘치고 입체적으로 묘사돼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철저한 취재정신 없이 어떻게 한나라 고조 유방이 젊은 날 즐겨 갔던 술집 두 군데가 기록으로 남을 수 있었겠는가?
고사성어는 ‘고사’와 ‘성어’의 합성어이다. ‘지난 이야기’인 ‘고사’가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담겨 있는 문장으로 보면 된다. 예를 들어 ‘다다익선多多益善’은 명장 한신과 유방이 나눈 대화 중에 나온 유명한 고사성어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 고사성어를 즐겨 거론하고 인용하면서도 정작 이에 얽힌 고사는 잘 모르고 있다. 다다익선이란 성어의 뜻풀이에만 급급한 탓이다.
성어보다 고사를 중점 이해해야
성어를 뒷받침하고 있는 고사, 즉 스토리를 바로 알고 나면 지금까지 별 생각없이 풀이해 왔던 뜻이 전혀 달리 보이고 이해된다. 다다익선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성어보다는 이런 고사를 바로 알아야만 중국인의 심리와 문화 코드를 읽어낼 수 있다.
고사성어 특히 <사기>의 고사성어는 ‘성어’보다 ‘고사’에 중점을 두고 이해해야 한다. 고사는 오늘날 기업경영의 홍보와 광고에 보편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 : 상대방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를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있게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마케팅에 무궁한 영감과 통찰력을 제공하는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부가가치가 점점 커질 것이다. 말하자면 인문학 광고를 위한 둘도 없는 텍스트가 될 전망이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리더십 함양에도 고사성어는 적지 않은 도움을 줄 수 있다. 변화가 다양하고 역동적인 상황을 인식하고 그 상황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간파해 이를 요약정리하는 힘을 기르는데 고사성어가 상당히 유력한 통찰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제 중국사 5,000중 3,000년을 담보하고 있는 절대 역사서 <사기>의 고사성어와 함께 경영과 인생의 지혜, 두마리 토끼를 함께 잡는 즐거운 지적知的 사냥에 나서보도록 하자.
사마천과 <사기> 국내 최고 학자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석·박사과정을 수료한 영산원불교대학교 김영수 전교수는 한중 관계사, 사마천 [사기] 연구, 중국 역사 문화연구가 전공분야로 [고대 중국 야철기술 발전사](역서)로 과학기술처 장관상 등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는 [현자들의 평생 공부법],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 [사기의 리더십], [사기의 경영학], [난세에 답하다], [성찰], [치명적인 내부의 적 간신], [역사의 등불 사마천, 피로 쓴 사기], [만화사기], [완역 사기 본기1,2], [간신론의 인간의 부조리를 묻다](번역서), [제국의 빛과 그늘](번역서) 등이 있다.
그는 또 2007년 EBS 특별기획 ‘김영수의 사기와 21세기’ 32회 출연. 국내 유수 대기업(삼성, LG, SK 등), 금융기관, 공공기관(국정원, 행안부, 법제처 등), 한국표준협회, 한국능률협회, 대학원 경영자과정, 전경련, 전국상공회의소, 세리ceo, 전국경영포럼 등에서 사마천의 <사기> 관련 리더십, 인재론, 인문경영 등 왕성한 강의활동을 펼치며 현재 영광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다.